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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학 [東洋學]

한신학 han theology 2018. 7. 9. 22:09

동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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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동양에 관하여 연구하는 학문.

동양에 관한 연구를 뜻하지만 실제로 사용될 때는 동양의 전반적인 사물에 관한 연구가 아니고 동양의 언어 ·문학 ·역사 ·종교 ·철학 ·학문 ·기예() ·풍속 ·관습 ·미술 ·음악 등 좁은 의미의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을 말한다.

이와같이 동양이라는 말 자체가 서양에 대한 명칭으로서, 일반적으로 아시아와 동의어로서, 때로는 오리엔트의 역어로서 사용되는 역사적 ·문화적인 개념이므로, 동양의 동물 ·동양의 식물 등을 연구하는 것은 동양학의 범위에 속하지 않고 다만 동물학 ·식물학의 분야에서 가끔 동양산()의 것을 연구하는 데 불과하다. 지리나 동물로서의 인류를 연구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며, 동양의 정치 ·경제 ·사회 등의 현재적인 현상을 조사 연구하는 것은 보통 이에 포함되지 않지만, 이런 현상을 역사적으로 연구하는 경우는 포함된다.

동양학의 범위는 유럽인이 동양이라고 일컫는 지역의 문화에 관한 연구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오리엔트 지방, 즉 아시아 서부와 이집트 방면에 관한 것이었으나, 그들의 지리적 지식 및 역사적 교섭의 무대가 넓어짐에 따라 오늘날에는 아시아 전부와 아프리카 일부에까지 미치고 있으며, 때로는 오세아니아 일부까지도 미친다.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유럽인이 동양의 사물에 대한 지식을 가지기 시작한 데서부터 동양학의 싹을 인정할 수 있겠으나, 학문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르네상스 전후부터이다. 르네상스의 한 원인이 되기도 한 이른바 인문학파()의 활동 중 구약성서를 헤브라이어()의 원문으로 읽는 일이 있어 이를 위한 헤브라이어의 학습을 통하여 오리엔트 지방의 새로운 연구 등이 일어난 것이어서 이것이 동양학의 원초적인 출발점이라 할 때, 동양학은 중세 말 근대 초의 신학에서 일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어서 이슬람 세계와의 접촉이 빈번하게 되어 그 지방의 사물을 파악할 필요에서, 또한 당시 일어났던 고대연구의 풍조 아래 아랍인()의 손으로 계승 보존된 그리스의 철학 ·과학 등을 배울 필요에서, 또 아라비아의 학자 ·문인 ·철인에 의하여 비롯된 색다른 문화를 알아야겠다는 필요에서 아랍어의 학습과 아라비아 문헌의 해독이 성행하게 되었고, 신학에서 발단된 동양학은 아라비아학()에서 하나의 학문으로 성립하는 과정을 밟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13세기 로마 교황의 권고에 따라 파리 ·로마 ·살라망카 ·볼로냐 ·옥스퍼드 등의 대학에 아랍어의 강좌가 설치된 것도 이러한 경향에서 나온 것이다.

이리하여 18세기에 들어와서 실베스트르 드사시, J.J.라이스케(1716∼1774), H.L.플라이셔(1801∼1888), I.Yu.크라츠코프스키 등이 나와 아라비아학이 독립하고, 또한 이 언어와 같은 계통으로 이미 구약성서 연구의 보조로서 발단된 헤브라이어의 연구를 중심으로 하여 아랍어 연구도 포함한 셈학도 독립하여 J.E.르낭(1823∼1892), T.뇔데케(1836∼1930), I.귀디, C.보로켈만 등이 명성을 떨쳤다.

이들과 나란히 19세기 이후 아시리아 ·바빌로니아의 고대문자 해독에 수반하여 그 유적의 탐사도 성행되어 아시리아학이 성립하면서 F.델리치(1850∼1922), B.마이스너(1868∼1947), A.H.세이스(1845∼1933) 등의 대가가 나옴으로써 이들과 관련된 이른바 성서고고학도 성립되었다. 19세기 초 J.F.샹폴리옹(1790∼1832)의 이집트 문자해독에 발원된 이집트학이 일어나 F.피트리(1853∼1942), J.H.브레스테드(1865∼1935) 등이 이것을 대성하였다.

아라비아학의 일부였던 이슬람 연구도 아라비아의 언어를 중심으로 하는 연구에서 점차로 이슬람 문화를 깊이 추구하는 경향이 되어 이슬람학이라 할 수 있는 1과()의 성립을 보게 되었으며, I.골트치허(1850∼1921), 스누크, 푸르포로뉴, M.J.후유(1836∼1909), L.마시뇽, F.자레(1865∼1945), E.헤르츠펠트(1879∼1948), J.H.크라메르스 등 고명한 학자가 배출되었다. 더욱이 동방의 금석학() ·고전학()도 발달하여 전자에 M.리즈바르스키, 후자에 C.M.프렌 등이 불후의 업적을 남겼다.

18세기에 있어 영국과 프랑스의 인도에 있어서의 항쟁이나, 이에 따른 영국의 인도지배는 산스크리트 외에 인도 ·실론 등의 토어연구()를 촉진하여 인도학이 성립되었다. W.존스(1746∼1794), A.H.안케틸 두페론(1731∼1805), 독일 낭만파의 거두 A.실레겔(1767∼1845) 등이 그 개척에 임함에 따라 다시 유럽 제어()와의 관련이 발견되어 F.봅(1791∼1867) 등에 의한 인도-게르만학이 파생하였고, 19세기에 들어와서는 G.H.그로테펜트(1755∼1853), G.로린슨(1812∼1902) 등을 창시자로 하는 이란학이 분립되어 C.바르트로메(1855∼1925), W.가이거(1856∼1943), E.쿤(1846∼1920), W.잭슨(1862∼1937), C.안드레아스, 잘레만, E.브라운(1862∼1926), A.크리스텐젠 등이 활약하였다.

유럽과 터키와의 관계가 복잡해짐에 따라 터키학도 발흥하여 A.C.도손(1780∼1855), J.V.하머푸르크스탈(1744∼1856) 등의 노력에 의하여 주로 그 역사가 해명되고 1890년 나폴레옹 하반()에서 8세기의 비석()이 발견되고 나서부터는 W.라들로프(1837∼1918), W.방, A.H.방베리(1832∼1913), C.브로켈만, V.바르톨트(1869∼1930), V.톰센(1842∼1927) 등의 노력에 의하여 상대()의 언어문화가 명백해졌다.

터키학에서 분립된 몽골학이 I.Y.슈미트(1779∼1847), W.코트비츠, G.J.람슈테트(1873∼1950), 바라디미르초프, N.포페, E.헤니시, K.그뢴베히 등에 의하여 개척되었으나 그 핵심을 이루는 것은 주로 러시아의 학자들이었다. 시베리아학()이라는 용어는 없지만 이 지역의 언어 ·지리 ·토속 ·고고학 등도 러시아 ·북유럽의 학자에 의하여 연구 조사되었다.

중국학은 17∼18세기에 프랑스인에 의하여 착수되었으나, 학술적인 연구는 19세기 초부터 차차 시작되어 20세기에 극치를 이루게 되었으며, 다른 나라도 참여하게 되었다.

티베트학은 헝가리의 초마 데 쾨뢰시(1798∼1842)가 개창하였고, 인도차이나 연구는 주로 프랑스인에 의하여 진전되면서 전자는 19세기 초에 발흥하게 되었고, 후자는 그 후기에 일어났다.

일본학은 10세기 가톨릭 선교사에 의하여 비롯된 후 켄펠, C.툰베리(1743∼1822), P.F.지볼트(1796∼1866) 등에 의하여 틀이 잡히게 되고, B.H.체임벌린(1850∼1935), W.G.애스턴(1841∼1911), E.H.사토(1843∼1929)에 이르러 크게 진보하였다.

이 밖에 인도네시아의 언어 ·토속 등의 연구도 성하며, 근래에 아프리카 연구도 동양학의 일부가 되어 런던대학의 동양학연구소도 최근 ‘Oriental’ 다음에 ‘African’이라는 단어를 덧붙이고 있다.

한국학은 17세기에 H.하멜의 《난선제주도난파기()》로 조선이 처음으로 세계에 소개됨에 따라 싹이 튼 후, W.E.그리피스(1843∼1928), H.B.헐버트(1863∼1949) 등이 미국은 물론 유럽의 한국학 연구를 위한 길잡이 구실을 하여 크게 공헌하였다. 또한 C.달레(1829∼1878), O.N.데니, E.F.베델(1872∼1909), A.로네이, F.매켄지, L.G.파이크, H.H.언더우드(1890∼1951), A.워슨, T.데네트, S.T.스탠리 등이 한국학의 진전에 기여하였고, 1945년 후 특히 미국을 비롯하여 유럽에서도 한국학 연구가 고조되고 있다.

중국의 둥베이[:만주] ·미얀마 등의 연구도 진행되고 있으며, 중앙아시아의 연구는 중국학 또는 그 밖의 근접지역의 연구에 부수적으로 시도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