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코끼리가 코를 뻗어 다른 코끼리의 코에 있는 사과를 집으려고 한다. 그런데 두 코의 모양이 달라 보인다. 하나는 실제 코끼리의 코이지만, 사과를 들고 있는 것은 ‘로봇’이다. 이 그림은 2014년 3월 창간한 저널인 ‘소프트 로보틱스(Soft Robotics)의 표지에 등장했다. 보통 로봇이라고 하면 금속으로 된 차갑고 딱딱한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이제 부드러운 로봇이 생활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말랑말랑한 로봇의 무한한 자유
딱딱한 금속을 쓰지 않고 실리콘처럼 부드러운 재료로 만든 소프트로봇은 애벌레나 뱀, 지렁이, 물고기 등을 본 딴 생체모방로봇의 일종이다. 세상에 처음 등장한 계기는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경생물학을 전공한 미국 터프츠대 생물학과 베리 트림머 교수는 1990년부터 담뱃잎을 먹는 박각시나방 애벌레를 연구했는데, 어느 날 애벌레처럼 움직이는 부드러운 기계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우선 로봇의 관절을 없앴다. 투명한 실리콘 고무판 한 장을 신문지처럼 말아 기다란 애벌레 몸통을 만들었다. 실리콘 탄성중합체는 각 성분을 어떤 비율로 섞느냐에 따라 뱀가죽처럼 뻣뻣하거나 ‘만득이(녹말 가루를 넣은 풍선 장난감)’처럼 몰캉몰캉하면서도 끈적하게 만들 수 있는 훌륭한 재료다. 트림머 교수는 이렇게 만든 ‘소프트봇(Softbot)’을 2006년 5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몬트레이에서 열린 기술 관련 국제심포지엄에서 최초로 공개했다.
소프트봇은 단번에 로봇공학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때까지 볼 수 없는 유연하고 우아한 움직임을 보여줬기 때문. 몸의 각 부분을 딱딱한 관절로 연결한 기존 로봇은 운동 범위가 매우 제한되기 때문에 그토록 유연한 움직임을 만들 수 없었다. 어렸을 때 갖고 놀던 인형이나 로봇을 생각하면 쉽다. 푹신한 솜으로 만들어진 인형은 팔을 동서남북 어느 방향으로든 돌릴 수 있지만, 플라스틱으로 만든 바비 인형이나 로봇 장난감은 팔을 정해진 방향으로만 움직일 수 있다. 기계의 이런 특성을 ‘자유도(FOM)’라고 부른다. 소프트로봇은 자유도가 무한대다. 다시 말해 기존 로봇이 딱딱한 바비 인형이라면, 소프트봇은 말랑말랑한 솜인형이었던 것이다.
이런 소프트로봇의 가장 큰 장점은 뭐니뭐니해도 ‘안전’이다. 오늘날 공장의 산업용 로봇은 인간에게 엄청난 혜택을 주고 있지만, 이를 일상생활에 적용하기란 쉽지 않다. 육중한 산업용 로봇에 사람이 맞기라도 하면 자칫 목숨을 잃을 수 있을뿐더러, 유리컵이나 계란 같은 물건은 강한 로봇이 쥐기엔 너무 약하다. 결국 인간과 로봇이 더 가깝게 지내려면 기존의 강함을 줄이고 부드러움을 키워야 하는데, 소프트로봇이 그 해답을 줄 수 있다.
단순해서 더 강력하다
트림머 교수는 애벌레의 복잡한 움직임을 어떻게 하면 단순하게 구현할 수 있을지도 고민했다. 기존 로봇은 관절마다 모터를 달고 복잡한 알고리즘으로 각각 제어해야 한다는 것이 단점이었다. 가령 커다란 우주선에 달린 수백 개의 관절은 카메라를 비롯한 각종 고가 장비와 우주인을 정확한 위치에 안전하게 옮길 수 있지만 대신 복잡한 알고리즘을 개발해야 했다.
그는 박각시나방 애벌레의 뇌를 제거해도 여전히 앞으로 기어갈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우아한 움직임의 비결이 뇌가 아닌 근육에 있었던 것이다. 트림머 교수는 몸통 안에 근육 역할을 할 머리카락 굵기의 형상기억합금 와이어를 지그재그로 엮어 넣었다. 그리고 와이어에 신경 역할을 할 전기 회로를 연결했다.
이 로봇은 정말로 애벌레처럼 움직였다. 회로에 전류를 흘려 보내자 와이어에 열이 가해지면서 수축됐고 그 방향으로 애벌레 로봇이 구부러졌다. 전류를 멈추자 와이어 온도가 내려가고 원래 모양으로 돌아왔다. 애벌레 뇌에 해당하는 복잡한 알고리즘 없이도 애벌레 움직임을 모방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기존 로봇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단순함이다. 소프트로봇의 이런 장점에 대해 트림머 교수는 “아주 유치한 설계”라고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특히 소프트로봇은 단순하기 때문에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소프트로봇이 아닌 정찰용 뱀로봇 등은 팔다리가 없고 제어하기 복잡해 속도가 느렸다. 2013년 3월, 미국 MIT 연구팀이 개발한 ‘소프트 물고기로봇’은 0.1초 만에 방향을 바꿀 수 있다. 마치 실제 물고기가 몸을 강하게 경련시켜서 적을 피하는 것처럼 빠르다. 비결은 바로 복부에 저장한 이산화탄소 기체. 꼬리 양쪽 면에는 울퉁불퉁하고 미세한 통로가 새겨져 있다. 꼬리 한쪽 면에 이산화탄소를 흘려 보내면 통로가 팽창한다. 이산화탄소를 공급하지 않은 반대 방향으로 꼬리가 구부러진다. 복잡한 알고리즘은 필요 없다. 이산화탄소 노즐만 여닫으면 된다. 꼬리 전체에 이산화탄소가 확산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0.1초에 불과하다.
의사 손 대신하고 재난 현장 투입되고
소프트로봇은 앞으로 여러 곳에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연소 시스템을 활용해 눈 깜짝할 새 공중으로 튀어 오르는 ‘점핑 소프트로봇’을 개발한 미국 하버드대 조지 화이트사이드 교수는 가장 먼저 의학계를 꼽았다. 소프트로봇이라면 외과 수술실에서 장기를 집어 들어 의사에게 건네주는 것도 가능한 덕분이다.
소프트로봇은 특유의 유연함으로 복잡한 지형을 쉽게 통과할 수 있다. 위험한 재난 지역의 수색 및 구조 작업에도 투입될 전망이다. 실제로 가정용 청소기 로봇으로 유명한 미국의 아이로봇(iRoBot)사는 고강도 섬유로 만들어 임무에 따라 모양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에어암(AIRarm)’을 개발해 폭탄제거 로봇에 설치했다.
소프트로봇을 일상에서 보기까지 해결해야 할 문제는 많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개발된 소프트로봇은 모두 ‘유선’이다. 로봇처럼 유연한 배터리가 아직 상용화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소프트로봇 덕분에 압축공기로 조절할 수 있는 인공근육이나 유연한 배터리, 탄성력이나 압력을 전기로 전환하는 배터리 등의 개발이 더 빨라질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ISO' 카테고리의 다른 글
품질경영 TQC의 활용에 의한 (0) | 2016.07.06 |
---|---|
반도체공정개론 (0) | 2016.06.28 |
의학공학과 교과과정 (0) | 2016.06.22 |
ERP전공(SAP트랙) (0) | 2016.06.21 |
물류 관리 [Physical Distribution Management , physical distribution management(PDM)] (0) | 2016.06.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