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 대학원]

의학철학 [Philosophy of Medicine]

한신학 han theology 2015. 1. 9. 12:16

외국어 표기 Philosophie der Medizin(독일어), Philosophie de la Médecine(프랑스어), (한자)

1. 개념 및 정의

의학(, medicine)의 본질에 관한 철학적 탐구를 하는 분야를 의학철학(, philosophy of medicine)이라고 부른다. 흔히 동서양의 의학철학을 이야기할 때 동양의학(, oriental medicine)은 종합치료, 자연치료, 동체()의학으로, 서양의학(西, western medical science)은 국소치료, 인공치료, 정체()의학 등으로 대조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해부학(, anatomy)이나 외과학(, surgery) 주사술 등은 서양의학이 더 발달된 것이 사실이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을 한 사람은 바로 그리스의 의성 코스의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of Cos, BC 460~377)다. 그가 의사로 활동할 당시에 히포크라테스학파보다 더 환영받는 의사들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히포크라테스의 이름만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의학의 아버지라고 추앙받는 이유는 그의 의학철학이 서양의학의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문장을 보면, 그 문장은 원래 의사의 인생은 짧고 의술은 계속된다는 뜻이었다. 그는 한 명의 의사가 아닌 의사집단의 경험적 의술의 축적을 통해 의술이 발전할 것으로 생각하고 선배 의사가 남긴 기록들을 보면서 배웠다. 그렇게 세대를 거듭할수록 히포크라테스의 학파는 더욱더 발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히포크라테스 학파의 의학철학은 당시 지배적 관념이었던 질병의 원인과 치료법을 신의 뜻이나 마법 같은 비현실적인 영역에서 구하지 않고 자연적인 것에서 기인한다고 본 합리적인 관점이다. 그의 사체액설은 기본적으로 질병의 원인은 자연에 있고, 자연에 의해서 인체를 구성하는 4가지 액체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게 될 때 질병이 생기며, 치료란 그러한 담즙의 흐름을 원래대로 돌리는 것에 있다고 믿었다. 이런 그의 철학은 현재까지도 서양의학의 기초가 되어 있다.

그러나 오늘날 국소치료, 인공치료로 발전해 온 서양의학의 의학적 사고의 새로운 경향은 현대의학에 대한 신뢰가 결여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의료 서비스에 대한 연구의 양과 비용은 수십 년이 지나는 동안 몇 배로 증가했지만, 이러한 노력들은 선진국의 이환율과 사망률에 기대만큼의 효과를 미치지는 못했다. 우리는 수많은 질병, 특히 전염성 질병과의 싸움에서는 이겼는지 모르지만, 대신에 다른 건강 문제, 특히 퇴행성 질환과 악성 질환, 이른바 정신 신체적 질환에 직면하고 있다.1)

2. 역사와 발전단계

1) 의학철학의 발생

클라우디오스 갈레노스(Claudios Galenos, 129~199)

클라우디오스 갈레노스(Claudios Galenos, 129~199)

근대의학이 등장하기 전까지 1600~1700년간 서양의학은 클라우디오스 갈레노스(Claudios Galenos, 129~199) 의학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근대 과학이 발달하면서 의학 방면에서도 경험과 실증을 중시하는 접근법이 의학에 도입되었다. 즉 의학의 방법론이 철학적이고 사변적인 접근에서 경험적이고 실증적인 방식으로 바뀌면서 의학과 철학(, philosophy)의 관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18세기에 모습을 드러낸 근대의학은 과학방법론과 성과를 도입하면서 치료술이 아닌 과학(, science)으로서의 의학을 지향하였다. 그 결과 근대의학은 발병 기전(mechanism) 같은 객관적인 현상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환자의 정서나 가치관 같은 주관적인 것은 무시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과학적 의학이 유행할수록 유럽에서 철학은 의학과는 멀어졌다. 따라서 의학철학은 질병 실체와 질병 분류 같은 존재론의 문제, 그리고 진단 논리와 건강과 질병 이론, 원인과 결과 관계 같은 인식론의 문제만 다루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현대의학은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의료기술의 비약적인 발달로 모든 질병의 퇴치가 가능할 것으로 보였지만 임상에서는 ‘질병에서 환자의 소외’라는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하였다. 이런 문제들은 오늘날 공해로 인한 환경파괴와 핵 위험의 증가로 나타난 과학 비관론과 맞물려 의학에 대한 신뢰를 추락시켰다. 현재는 생명의료기술의 발전과 병원의 대형화 및 영리화 추세로 ‘의료의 비인간화’와 윤리적 문제들이 부각되고 있다. 이와 같은 의학의 위기는 현대의학에 대하여 철학적 반성을 하는 동기로 작용하였다. 이 과정에서 의학의 본질과 기능 및 의학방법론을 반성하는 의학철학(philosophy of medicine)이 태어나게 되었다.

2) 한국의 의학철학

우리나라에서의 의학철학 역사를 보면, 우리 민족의 오랜 전통의학인 한의학(, Korean medicine)은 의학이자 동시에 철학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근대 이전의 한의학에서 의()와 철()을 엄밀하게 구분할 수도 없으며 구분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 한편 중국에서는 1920년대, 한국에서는 1930년대에 한의학의 과학화 논쟁으로 전개되기도 하였다. ‘한의철학’ 혹은 ‘한의학의 철학’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도 바로 이 시기이며 주로 음양오행과 연관된 내용을 다루었다.

한편 1977년에 의료보험이 시작되면서 국가는 의사집단을 통제하게 되었다. 국가 권력과 의사집단 사이에는 긴장관계가 조성되었고 의사들은 비로소 진료의 자율성에 대한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이어서 2000년 의약분업과 의료제도 개혁을 둘러싸고 6개월간 계속된 의료 파업 사태로 거의 모든 개원의사와 전공의들이 파업에 동참하였다. 의사들은 의약분업이나 의료제도 개혁의 부당성을 주장하였으나 사회는 이를 집단이기주의 정도로 받아들였다.

6개월간의 의료대란을 통해 의학을 보는 관점이나 철학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결론지은 의료계는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의학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의학철학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환자의 신뢰를 얻고 사회적 책무를 다하며 환자의 이해와 상호 소통을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의료윤리학(, medical ethics) 및 의료인문학(, medical humanities)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모습들은 서양에 비해 약 30년 정도 늦게 나타난 일이지만 아주 짧은 기간에 의과대학을 포함한 의료계에 널리 수용되고 있다.

3. 접근방법 및 주요 연구방법

에드먼드 대니얼 펠레그리노(Edmund Daniel Pellegrino, 1920~2013)

에드먼드 대니얼 펠레그리노(Edmund Daniel Pellegrino, 1920~2013)

오늘날 차가운 기계의 진단과, 정확하고 이성적인 판단만이 최고의 가치로 남은 의료현장에는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집단들의 자기주장만이 남발하고 있다. 생명을 구하는 수술보다도 이윤, 몸매와 외모를 뜯어고치는 수술이 더 중요해진 왜곡된 의료문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를 고칠 수 있는 의학적 인간학(, anthropology)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올 수 있을 것인가는 전적으로 의료인들의 몫이다.

첨단과학을 달리는 생명공학(, biotechnology)과 관련된 논란을 비롯하여 각종 의료윤리의 문제, 의료영역에서 사라져가는 따뜻한 인간애의 문제, 의사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의 문제 등이 살아있는 철학적 맥락 속에 위치해 있음을 볼 수 있다. 의학의 궁극적 대상인 질병, 건강, 치유 그리고 인간과 생명에 대한 철학적 해명을 통해 의학철학은 제 자리를 찾을 수 있다.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 속에서 의학은 본래의 목적과 의의를 회복하게 되며 진정한 철학으로의 복귀를 꿈꿀 수 있다. 사실상 의학이 본래 철학과 한 몸이었음을 역사적 사례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철학적, 의학적, 인간학적 성찰을 통해 규명하기 위해서는 의료관계를 의사와 환자의 인격적 만남으로 규정함으로써 가능해진다.

의학의 궁극적 대상인, 그러나 현대의학의 지나친 과학주의 때문에 잊히고 소홀히 취급되고 있는 질병-건강과 치유의 역동적 상호관계, 생명의 개념을 논해야 한다.

근대 이후 철학과 헤어진 의학은 스스로 본질이나 가치를 반성할 능력을 상실한 만큼, 의학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의학철학의 탄생이 필요하였다. 현대 의학철학의 선구자인 에드먼드 대니얼 펠레그리노(Edmund Daniel Pellegrino, 1920~2013)는 근대의학에 위기가 나타난 이유를 의학의 본질과 역할을 제대로 설정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반성을 의학철학의 핵심으로 삼았다. 펠레그리노는 1998년 출간된 자신의 책에서 의학과 철학의 관계를 다음 네 가지로 나누었다.

첫째는 ‘의학과 철학(medicine and philosophy)’으로 의학과 철학을 공통된 주제에 대하여 독립적인, 개별 학문의 방법론에 근거하여 설명하는 방식이다. ‘삶과 죽음’, ‘고통’ 그리고 ‘몸’ 혹은 ‘몸과 마음’의 문제 등이 주제가 된다.

둘째는 ‘의학에서의 철학(philosophy in medicine)’으로 의학 문제를 철학의 방법으로 해명하려는 시도를 말한다. 질병에 대한 존재론이나 인식론, 관찰의 한계, 의료윤리의 문제 등이 해당된다.

셋째는 ‘의철학(philosophy of medicine)’으로 환자와 의사 사이의 만남이나 의료 윤리의 철학적 근거처럼 의료의 본질적 의미 등을 주로 다룬다.

마지막은 ‘의료철학(medical philosophy)’으로 임상의사가 자신의 경험에 근거하여 의학을 비판하는 작업, 즉 임상과 관련된 개인적 반성과 이에 근거한 임상적 지혜를 추구하는 것을 뜻한다.

4. 주요 용어 및 관련 직업군

1) 주요 용어

• 국소치료(local treatment): 신체 전체에 대한 치료가 아닌 일부분에 대한 치료를 하는 것을 말한다.

• 사체액설(, humor theory): 고대 그리스와 로마시대 의사들과 철학자들이 주장하던 인체의 구성 원리이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몸이 네 가지의 체액으로 차 있으며, 모든 병과 심신의 장애는 체액들 중 하나라도 모자라거나 넘치는 데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네 가지 체액은 혈액(, blood), 점액(, phlegm), 황담즙(, yellow bile), 흑담즙 (, black bile)으로 이것은 각각 사계절과 네 가지 원소(공기, 물, 불, 흙)에 대응된다.

• 의료윤리학(medical ethics): 의료의 윤리적 책임에 관한 연구를 하는 분야이다. 예를 들어 임신중절이나 안락사 문제 등 윤리적 딜레마가 발생할 때 이를 어떻게 윤리적 문제의 발생 없이 극복할 수 있는가를 고민한다.

• 의료인문학(medical humanities): 의료인문학은 의학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이다. 의학의 역사를 다루는 의사학, 의학의 철학을 다루는 의학철학 등 기존 인문학의 학문적 범주 안에서 의학의 주제들을 특화시켜 다루는 것이 의료인문학이다.

2) 관련 직업군

• 의학철학 교수
• 인문학 연구원
• 의사
• 보건 관련 공무원

참고문헌

  • Edmund D. Pellegrino, H. Tristram Engelhardt Jr. and Fabrice Jotterand(2008), The Philosophy of Medicine Reborn: A Pellegrino Reader(ND Studies in Medical Ethics) 1st edition,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 진교훈(2002), 『의학적 인간학: 의학철학의 기초』,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 이호영 역(1999), 『의학철학』, 헨릭 울프 저, 서울: 아르케.
  • 오모다카 히시유키 저, 신정식 역(1991), 『의학의 철학 2』, 서울: 범양사.

각주

  1. 1 이호영 역(1999), 『의학철학』, 헨릭 울프 저, 아르케, 2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