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 대학원]

논리학 [ logic , 論理學 ]

한신학 han theology 2015. 9. 8. 21:43
요약
인간의 지식활동에 관련된 특정한 종류의 원리들을 분석하고 명제화하며 이들을 체계화하는 분야의 학문.

이 지식은 일반적으로 두 종류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김씨의 큰 아이는 아들이다’와 같은 지식이다. 또한 ‘김씨의 큰 아이는 아들이고 그의 둘째 아이도 아들이고 셋째도 아들이다. 그리고 김씨는 현재 세 아이밖에 없다. 고로 김씨의 아이들은 모두 아들이다’와 같은 지식이다. 이러한 지식을 사실적 지식()이라고도 하고 귀납적 지식()이라고도 한다.

둘째는 ‘모든 남자는 사람이다. 그리고 에디슨은 남자이다. 그러므로 에디슨은 사람이다’에서와 같은 지식이다. 이를 관계적 지식() 또는 연역적 지식()이라고 한다.

두 경우의 지식은 모두 간단히 명시될 수 있다. 귀납적인 경우 ‘김씨의 아이들은 모두 아들이다’라는 주장과 연역적인 경우 ‘에디슨은 사람이다’라는 주장이다. 여기에서 논리학은 이러한 주장들에 대한 근거로서 제시된, 첫째 경우의 사실들과 둘째 경우의 명제()들이 각기의 주장들에 대해 어떤 종류의 원리에 입각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를 조사한다. 첫째의 근거와 주장의 추리관계를 귀납적이라 하고, 둘째의 근거와 주장의 추리관계를 연역적이라 한다. 논리학은 이러한 특수한 관계를 연구한다는 점에서 다른 차원의 지식의 원리를 취급하는 물리학이나 사회학과 구별된다. 따라서 논리학은 크게 귀납논리학()과 연역논리학()으로 구분된다. 양자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특히 후자는 19세기 말부터 크게 발전하였고 대부분의 논리학 교재는 이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연역논리학은 연역적 추리에 관련된 많은 문제를 다룬다. 애매와 모호의 구조를 밝히고 오류의 유형을 나누며 추상 ·정의 ·분류의 개념을 명확히 한다. 의미의 표준을 제시하고 번역의 가능성을 논의한다. 사유()의 법칙과 추리()의 개념, 그리고 체계에 대해서 간단히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사유의 법칙으로 알려진 것들은 보통 3가지가 있다. 첫째는 ‘A는 A이다’라는 동일률()로서 참인 명제는 참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모순율()로서 ‘어떠한 명제도 동시에 참이면서 또한 거짓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는 ‘어떠한 명제도 참이거나 거짓일 뿐 그 중간치는 없다’라는 배중률()이다.

과거에는 이 세 명제들이 법칙으로 불렸고, 영원하며 절대적이라 믿었다. 그래서 논리적 법칙으로 불리기도 하면서 이에 근거한 논리학은 역사가 없다고도 하였다. 논리학은 수정할 수 없으므로 변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치논리학()의 체계는 배중률을 거부하고, 시제논리나 직관주의 논리는 모순율을 수정한다. 그리고 양자논리는 동일률까지 재고하고 있다. 이 명제들을 받아들이는 체계에서는 법칙명제일 수 있지만 모든 체계에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체계에 따라서는 이 명제들이 추리의 원리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추리에는 타당한 추리와 부당한 추리가 있다. 추리란 전제들과 결론의 관계이며 타당성은 이 관계의 어떤 성질이다. 그리고 전제들과 결론으로 이루어진 명제들의 집합을 논의라 하므로 타당성은 논의의 성질이 된다. 타당이란 전제들이 참일 때 결론이 거짓일 수 없는 논의의 성질이다. 앞의 에디슨의 논의가 그 예이다. 또한 ‘한국의 모든 대학들은 시골에 있다. 그리고 이화여자대학은 한국의 대학이다. 그러므로 이화여자대학도 시골에 있다’라는 논의도 그 전제와 결론이 실제로 거짓이지만 타당하다. 왜냐하면 전제들이 참이라면 결론이 거짓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당이란 전제들이 참이라 할지라도 결론이 거짓일 수 있는 논의이다. 예를 들면, ‘모든 프랑스 사람은 프랑스를 사랑한다. 그리고 드골은 키가 크다. 그러므로 드골은 프랑스를 사랑한다’라는 논의는 전제들과 결론이 모두 참이라 하더라도 부당하다. 왜냐하면 전제들이 참이라 하더라도 결론이 거짓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추리의 기술 및 그 장치에 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삼단논법()을 유형별로 논의한 데서 비롯되었고, 현대에 와서는 기호체계()를 이루어 강력한 장치를 갖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명제논리학’과 ‘기호논리학’을 참조할 수 있다.

현대에 와서는 어떤 논리학도 하나의 체계 안에서 제안된다. 예를 들면 B.A.W.러셀의 논리체계는 앞의 3개의 사유법칙 명제들 중 어느 하나도 그의 4개의 공리()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그 명제들은 러셀의 체계 안에서 정리()로서 유도될 수 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어떤 체계 안에서는 그러한 어떤 명제가 유도될 수 없다. 그러면 어떤 명제는 이 체계에서 거짓이지만 러셀 체계에서는 참이 된다. 그러므로 이제 논리체계란 채택하는 공리들과 추리의 규칙에 따라 상대화한다. 그리고 어떤 비약에도 불구하고 이 점을 이용해 볼 수 있다. 논리체계란 어떠한 이론에도 스며들어 있으므로 어떤 인식()은 체계에 따라 참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 이론의 논리체계를 분명히 하는 경우 그 인식의 논리를 얻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근거로 ‘개념()의 논리’라는 표현이 가능하고 개념분석이 근본적으로 논리적 활동임을 알 수 있게 된다.

귀납논리학은 현재의 관찰된 사실로부터 어떤 보편적인 명제를 끌어내는 추리에 관한 연구를 한다. 이 보편적인 명제는 현재 아직 관찰되지 않은 경우도 포함하고,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의 경우도 포함한다. 이것은 과거와 현재에 특정한 수의 황새가 빨간 다리를 가지고 있다는 관찰을 근거로 ‘모든 황새는 빨간 다리를 하고 있다’라는 보편적 명제를 주장하는 경우이다. 이때의 추리의 정당화에 대해 D.흄이 의문을 제기하였고, J.S.밀, 러셀, J.케인스, R.카르나프가 확률이론()을 통하여 여러 가지 설명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C.S.퍼스, J.듀이, 그리고 K.R.포퍼는 이러한 귀납논리학의 문제를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하였다. 그것은 황새의 보편적 명제에 대하여 아직 반례()가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퍼스는 그 보편명제가 참이므로 받아들인다고 생각하지 않고 아직 거짓이 아니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 보편명제는 ‘법칙’이라기보다 ‘가설()’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러므로 퍼스의 귀납성은 빨간 다리의 황새들을 열거하는 데서 찾지 않고 황새의 보편적 명제에 대한 있을 만한 반례의 경우들을 찾아보면서 아직 반례를 얻지 못하는 데서 설명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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