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오프앤프리 국제확장영화예술제 세미나
"신지승, 이은경의 마을영화,
일상의 예술, 영화교육의 가능성"
일시 2013년 5월 18일(토) 3시~6시
장소 서울시립미술관 3층
주최 (사)비상업영화기구 ⦁ 오프앤프리 국제확장영화예술제 조직위원회
주관 오프앤프리 국제확장영화예술제 집행위원회
예술과 공공성, 일상, 영화교육으로서의 가능성(자료 첨부파일)
- 신지승, 이은경의 공동체영화철학
토론 정재형
(한국문화예술교육학회회장, 오프앤프리국제확장영화예술제조직위원장)
I. 마을영화의 철학
영화와 공공예술
지금 이 시기 가장 중요한 영화활동
나는 왜 영화를 만드나. 자기 성찰적 영화하기
영화로 나 되기
나 되기는 너 되기
너와 나 하나 되기
신지승, 이은경의 돌탑영화 혹은 마을영화
만들기가 아니라 만드는 거 도와주기
신지승, 이은경의 영화 만들기는 종래 영화처럼 감독이 영화 만들기가 아니라 만드는 거 도와주기 역할을 한다. 이 변화는 영화존재론의 큰 변화를 긋는 운동이다. 그동안 감독은, 예술은 관객을 끌고 가 계몽하였다. 하지만 이 운동은 영화를 성찰한다. 영화는 더 이상 계몽 주체가 아니라 나눔 매체이고 조력자일 뿐이다. 조력자도 오만한 명칭이고 단지 공존하는 대상일 뿐이며, 왼손이 하는 일을 모르게 하는 오른손이며, 내가 있어야 존재하는 너인 것이다. 화엄경에서 말하는 둘이 아닌 것의 추구. 영화와 일상은 같은 것이다.
신지승, 이은경 영화는 볼리비아 우카마우집단이 1960년대에 했던 민중영화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그들은 마을로 들어가 주민들 이야기를 공동창작하고 카메라를 가르쳐주고 주민 스스로 시각에서 영화를 만들도록 도와준다. 감독은 영화를 만들어 주는 게 아니라 도와주는 사람이다.
문제는 실천이다. 이런 방식의 선택은 기술이 아니라 삶의 전체 태도이다. 신지승, 이은경은 마음을 비우고 비로소 가능해진다. 만일 먹고 사는 경제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지 못한다면 이 방식은 존재하지 못한다. 감독은 무소유를 실천하는 존재로서 살아간다. 무소유란 모든 걸 소유하지 않는 게 아니라 축적하지 않는 삶이다. 영화란 삶의 자세를 바꾸는 철학이다.
영화하기란 살기란 말이다. 신지승, 이은경은 영화를 돌려주는 것이라 정의한다. 원래 자리로 돌려주기. 그들은 마치 노자 말에서처럼 무위자연으로 복귀한다. 자연 스스로를 실천하는 삶. 그 자리가 곧 홍익인간의 삶이다. 널리 사람들을 유리하게 만드는 것. 사람들 스스로 왜 사는지 의미를 만들고 깨닫는 삶.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 그 가치를 향해 신지승, 이은경은 영화를 만들지 않고 영화라는 단지 매체일 뿐인 그것을 사람들 사이에서 가치 실천해간다. 그 가치는 일상 삶을 반성하고 의미를 갖는 기록이며 재현인 것이다. 그게 신지승, 이은경의 영화철학이다.
II. 나와 너, 우리 모두를 성찰하는 마을영화의 위대함
<선비가 사는 마을> (신지승)
이 삶은 오래 지속될 것인가.
영화<선비가 사는 마을>은 선비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듯이 서울, 대도시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로 가득차 있다. 선비들이 사는 마을 경북 영주시 무섬 마을은 유령마을이다. 그곳에 없는 것들. 젊은이가 한명도 없다. 그곳에 개 복실이가 있다. 인심 좋은 개 복실이. 한바탕 웃음이다. 개에게 인심을 말하다니. 복실이는 묶어놓을 필요가 없다. 사람을 물지 않으니까. 그녀 복실이는 인심 좋은 사람들과 더불어 살다보니 덩달아 인심 좋아져서 사람을 경계하지도 물지도 않는다. 그녀는 그저 사람들 사이에서 심심하게 살다가 평온하게 임종을 맞이하는 그런 사람과 같은 개다. 그 인심 좋은 복실이 같은 개는 서울에 더 이상 없다.
이 영화는 젊은이 없는 마을, 대신 인심 좋은 개와 인심 좋은 어르신들이 사는 마을을 통해 현재 도시가 잃어버리고 사는 가치에 대해 토론한다. 과연 이 삶은 영원히 지속할 수 있는가. 그래야만 하는 이유는 뭔가. 그건 사람 가치, 삶 목표에 관한 성찰이다. 앞으로만 달려가는 삶. 계획만 있고 앞만 있고 뒤는 없고 돌아봄이 없는 세상은 숨 막힌다. 신지승 감독이 선택한 마을 무섬마을 이야기는 유령과 유령 같은 서울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관광단지로 조성된 마을은 형식적으로 전시적으로 존재한다. 달집태우기 민속전통 유희 때문에 타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고 의식을 집전하는 마을. 이 마을에 서울 처녀 두 명이 찿아온다. 그들은 이제는 청년이 살지 않고 마을만 존재하는 죽은 도시 무섬마을에 들어선다. 무섬마을, 그 말처럼 무섬, 무서움을 주는 으스스한 동네다. 어르신들은 유령처럼 느리게 움직이고 그들은 기력이 없다. 그러나 그들에게 도깨비는 바로 서울서온 두 처녀다. 타국에서 온 듯 낯선 모습으로 나타난 두 여성은 더 이상 이 마을 정서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외모가 변해있다. 도농간 격차는 으스스함으로 다가온다.
<서촌일기> (신지승)
신지승은 자기와 영화의 차이가 없다. 자기가 영화 안에 있고 내레이션으로도 개입한다. 또한 극영화와 다큐 차이도 없다. 일상과 영화 차이도 없다. 영화는 영화 속에서 영화를 모방하는 자기 반영성으로 존재한다. 이 영화는 일상과 영화 경계를 허무는 현대영화의 한 지점을 보여준다.
영화엔 노래를 하는 여성이 등장한다. 그녀는 노래를 들어줄 사람이 없어 괴로워한다. 노래하고 싶어 하는 이 모습은 인간의 욕망하는 모습이다. 사진작가는 자신 동료의 사진을 그저 찍어 전시한다. 어떤 사건도 없다. 동료들 얼굴만 전시되어 있다.
술 취한 여성 모습, 고민하는 청춘들 모습.
촬영 모습을 그대로 담는 신지승의 카메라는 영화의 신화를 벗겨내는 방식에 있어서 고다르 기법을 그대로 재현한다. 그는 사람에게 연기를 시키고 그 모습을 다시 찍고 그것을 상영한다. 영화는 현실에서 만들어지고 현실은 영화가 된다. 그 경계가 없어지고 마침내 영화는 현실이 된다. 감독은 흐느낀다. 김기덕 다큐 <아리랑>에서처럼 신지승은 자신 영화 작업과 삶의 허무를 진하게 느낀다. 어둠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영화를 왜 하려고 하는가? 이 성찰의 목소리는 감독 자신 그리고 관객 모두에게 하는 말이다. 그건 영화의 존재론이고 목적론이다. 영화의 성찰성은 어둠속에서 빛난다. 영화는 자신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이고 모두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라는 믿음이 빛난다. 신지승은 구도적 삶을 사는 것이다.
III. 마을영화와 미래 교육의 새로운 방식
돌멩이가 곧 보석이 된다. 사람이 부처가 된다. 돌멩이가 보석이다. 사람이 부처다. 그건 석가의 말이다. 신지승은 실천한다. 성인의 말을. 돌멩이로 탑을 쌓으므로 돌탑영화다. 동네에서 만들어지니까 동네영화다. 일본 민나노 시네마, 모든 이를 위한 영화와 같은 실천이다. 또 다른 동네에서 작업하는 임흥순 작품들과 더불어 이 작업들은 지금 이 시기 그 어떤 영화작업들 가운데 가장 소중하다. 교육이란 입시준비가 아니라 인간을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신지승, 이은경은 영화 찍기와 영화보기가 곧 삶을 사는 것이라 가르친다. 그렇다면 왜 이 영화들의 방식이 교육이 될 수는 없을까? 무엇이 우리 교육을 가로막는 것일까? 아니면 교육에 신지승, 이은경의 영화가 활용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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