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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문트 프로이트 [Sigmund Freud]

한신학 han theology 2017. 10. 6. 20:53

지그문트 프로이트

[Sigmund Freud ]

요약 오스트리아의 신경과 의사, 정신분석의 창시자. 히스테리 환자를 관찰하고 최면술을 행하며, 인간의 마음에는 무의식이 존재한다고 하였다. 꿈·착각·해학과 같은 정상 심리에도 연구를 확대하여 심층심리학을 확립하였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지그문트 프로이트

출생-사망1856.5.6 ~ 1939.9.23
국적오스트리아
활동분야심리학
출생지오스트리아 모라비아(현 체코) 프라이베르크
주요저서《꿈의 해석》(1900)

1856년 5월 6일 모라비아(현 체코) 지방 프라이베르크 마을에서 유대인으로 출생하였다. 그가 태어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유대인에 대한 편견이 심했다. 그의 아버지는 세번째 결혼한 아말리에(Amalie)와의 사이에서 지그문트를 낳았다. 그의 이복 형은 어머니와 나이가 비슷했다. 이복 형제들에 비해 어머니의 보살핌을 많이 받았고 김나지움 7학년 내내 최우수 학생으로 총명했다. 빈 대학 의학부에 입학하여 에른스트 브뤼케 실험실에서 신경해부학(Neuroanatomy)을 공부하였다. 졸업 후 얼마 동안 뇌의 해부학적 구조를 연구하였고, 코카인의 마취작용을 연구하여 우울증 치료제로 시도했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1885년 파리의 살페트리에르(Salpetriere) 정신병원에서 마르탱 샤르코의 지도 아래 히스테리 환자를 관찰하였고, 1889년 여름에는 낭시(프랑스)의 베르넴과 레보 밑에서 최면술을 보게 되어, 인간의 마음에는 본인이 의식하지 못하는 과정, 즉 무의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이보다 앞서 J.브로이어는 히스테리 환자에게 최면술을 걸어 잊혀져 가는 마음의 상처(심적 외상)를 상기시키면 히스테리가 치유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프로이트는 브로이어와 공동으로 그 치유의 방법을 연구하였고, 1893년 카타르시스(Katharsis:)법을 확립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이 치유법에 결함이 있음을 깨닫고 최면술 대신 자유연상법을 사용하여 히스테리를 치료하는 방법을 발견하였고 1896년 이 치료법에 ‘정신분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말은 후에 그가 수립한 심리학의 체계까지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1900년 이후 그는 꿈·착각·말실수와 같은 정상 심리에도 연구를 확대하여 심층심리학을 확립하였고, 또 1905년에는 유아성욕론()을 수립하였다. 하지만 초기 그의 학설은 무시되었으나, 1902년경부터 점차 공명하는 사람들(슈테켈, 아들러, 융, 브로일러)이 나타났으며, 1908년에는 제1회 국제정신분석학회가 개최되어 잡지 《정신병리학 ·정신분석학연구연보》(1908∼1914), 《국제정신분석학잡지》 등이 간행되었다. 또 1909년 클라크대학 20주년 기념식에 초청되어 강연한 일은 정신분석을 미국에 보급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사변적 경향을 강화하여 이드(id)·자아·초자아()와 같은 생각과, 생의 본능 에로스·죽음의 본능 타나토스 등의 설을 내세웠다. 1938년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되자 나치스에 쫓겨 런던으로 망명하였고, 이듬해 암으로 죽었다.

20세기의 사상가로 프로이트 만큼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없다고 평가되며, 심리학 ·정신의학에서뿐만 아니라 사회학·사회심리학·문화인류학·교육학·범죄학·문예비평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주요 저서에는 《히스테리 연구》(1895), 《꿈의 해석》(1900), 《일상생활의 정신병리학》(1901),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1905), 《토템과 터부》(1913), 《정신분석 강의》(1917), 《쾌락 원칙을 넘어서》(1920), 《자아와 이드》(1923)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