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포스트모더니즘 개념과 역사
2. 포스트모더니즘 영화 미학
3. 포스트모더니즘 영화의 주요 특징
4. 포스트모더니즘 영화 논쟁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연속이면서 부정이다. 리얼리즘의 재현 미학을 부정하지만, 동시에 모더니즘의 비대중적 엘리트 취향에 반대한다. 포스트모던 영화는 198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포스트모던 영화 미학은 감각적 이미지의 콜라주, 상호 텍스트성, 혼성모방, 스펙터클을 추구한다. 포스트모던 영화의 미학은 이중적이다. 그것은 자본주의 상업 영화이면서 동시에 예술적 창조성과 유토피아의 잠재성을 갖는다.
1. 포스트모더니즘 개념과 역사
‘포스트모던’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만든 아널드 토인비(Arnold J. Toynbee, 1889~1975)
ⓒ 커뮤니케이션북스
포스트모던이라는 용어는 영국의 역사가 아널드 토인비(Arnold J. Toynbee)가 『역사연구』에서 19세기 말 이후 서구 근대 문명의 위기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최초로 사용했다(Toynbee, 1965). 이 용어는 1960년대 이후 건축 분야에서 가장 먼저 대중화된다. 기능성과 실용성을 우선하는 모던 건축에 대한 반발로 포스트모던 건축의 흐름이 생겨났다. 포스트모던 건축은 모더니즘의 직선적 단순미를 벗어 버린다. 장식과 치장을 통해 다양한 스타일을 혼합하는 경향을 보여 준다(Jencks, 1986).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포스트모더니즘은 문학, 음악, 미술, 패션 등 다양한 문화 예술 분야로 확산된다. 포스트모던 예술은 모더니즘의 엘리트주의에 반대하는 미국과 영국의 팝아티스트들에 의해 대중적이고 상업적으로 제기된다(Bordwell, 2008).
1979년 리오타르는 〈포스트모던의 조건〉에서 유럽의 전후 복구가 완료되는 1950년대 말 이후 현대자본주의의 산업적 변형을 배경으로 한 사회문화적 현상을 지칭하면서 이 용어를 사용했다(Lyotard, 1984).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은, 포스트모더니즘을 '후기 자본주의의 문화 논리'라고 규정한다(Jameson, 1984). 포스트모더니즘은 다국적 자본주의 시대의 탈역사 이데올로기를 반영한다. 또한,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는 초국적 자본주의의 '시공간 압축(Time-space compression)'의 논리가 포스트모더니즘의 탈역사 이데올로기와 상통한다고 본다(Harvey, 1990).
하비에 따르면, 포스트모더니즘은 68혁명 이후 1970년대 자본주의 위기를 정치경제적 배경으로 한다(Harvey, 1990). 포스트모더니즘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된 것은 1980년대 이후 레이거노믹스에 따른 포스트포디즘과 신자유주의의 등장 이후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산업 사회에서 정보 사회로, 국가 자본주의에서 글로벌 자본주의로, 제조업 자본주의에서 금융 자본주의로 현대 사회의 총체적 변화를 반영한다.
20세기 초 모더니즘이 리얼리즘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한 반면, 1960년대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한다. 모더니즘이 과학적 합리성과 사회의 진보에 기반을 둔 사상이라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냉소적이고 탈역사적인 이데올로기에 기반을 둔다. 모더니즘이 아방가르드의 예술 실험에 몰두하는 반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자본주의 소비문화와 대중예술에 기반을 둔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의 확산은 TV, 비디오, 케이블, 뉴미디어 등 대중 매체의 시대가 도래한 것과 연관이 있다. 현실을 바라보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한 것이다(Kognisberg, 1997). 포스트모더니즘은 논리적 인쇄 문화에서 감각적 영상 문화로 사회문화의 변화를 반영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시공간 압축성, 즉흥성, 순간성, 파편성의 이데올로기다. 이에 대해 일찌기 프랑스 상황주의자 기 드보르(Guy Debord)는 '스펙터클의 사회'가 도래했음을 선언했다(Debord, 1983). 스펙터클의 사회는 직접적 삶과 재현 대신에 이미지와 복제물이 지배하는 포스트모던 사회다.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는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계급 적대성의 새로운 형태(new forms of class antagonism)'에 대해 주목한다(Negri, 1988). 그에 따르면,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계급 적대성은 사라지거나 탈역사화 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공장을 넘어 사회의 모든 영역으로 확대된다. 네그리는 포스트모던 자본주의 '제국(Empire)'에 맞서는 사회적 노동자 '다중(Multitude)'의 세계적 차원의 시민권 확보 투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Negri, 2001).
포스트모더니즘의 철학적 뿌리는 포스트구조주의다.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Jean-François Lyotard),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질 들뢰즈(Gilles Deleuze) 등 일련의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자들은 수천년 동안 서양 철학을 지배해 온 절대적 진리와 합리주의 사상을 거부한다.
포스트구조주의는 거대 서사를 해체하고 미시성의 담론을 제시한다. 또한 그들은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 자크 라캉(Jacques Lacan),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 등의 구조주의 철학이 지닌 근본적 한계를 극복한다. 포스트구조주의는 구조와 체계로 환원될 수 없는 주체와 차이의 영역, 세계의 다원적 질서를 복원한다.
이런 맥락에서 데리다는 차이와 지연의 개념을 통해 언어의 절대적 의미를 해체한다(Derrida, 1976). 리오타르는 거대 서사가 설득력을 지닐 수 없는 현대적 풍경을 직시한다. 또한 푸코의 패놉티콘(Panopticon)은 사회의 모든 영역을 감시하는 권력의 미시정치학을 전개한다(Foucault, 1979). 보드리야르는 복제물이 실재를 지배하는 포스트모던 사회의 허무주의를 포착한다(Baudrillard, 1983). 반면, 들뢰즈는 포스트모던 사회가 지닌 해방적 잠재력에 주목한다. 그는 현실을 넘어서는 가상 이미지의 창조성과 주체의 역동성을 이론화한다(Deleuze, 1987).
포스트모더니즘 미학은 모더니즘 미학의 연속이면서 동시에 부정이다. 모더니즘과 마찬가지로 포스트모더니즘 역시 리얼리즘의 객관적 재현 미학에 반대한다.
그러나 동시에,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엘리트 취향과 비대중성에 반대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절충주의(eclecticism)와 다원주의(pluralism)의 미학을 보여 준다. 엘리트 고급 예술과 대중문화, 전통과 현대, 그리고 장르, 스타일, 관습의 경계를 허문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잡종성(hybridization)과 복합성(complexity)의 미학을 제시한다. 그것은 중심과 주변의 혼재, 패러디(parody),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 혼성모방(pastiche), 나열과 병치(juxtaposition), 콜라주(collage) 등 다양한 테크닉을 구사한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따르면,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창조란 언제나 새로운 반복일 뿐이다. 그러므로 포스트모더니즘은 단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Kundera, 1985)으로 가상 이미지의 표면 유희를 추구할 따름이다.
1990년대 이후 컴퓨터와 뉴미디어의 본격 등장은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을 새롭게 부각시킨다(Darley, 1993). 디지털 복제와 인터넷 네트워크의 발달은 가상 이미지가 현실을 지배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새로운 시대를 연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은 하이퍼리얼리티(Hyper-reality)의 가상공간을 창출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컴퓨터 합성과 가상 이미지에 기초한 디지털 영상 문화의 새로운 키워드로 부활한다.
2. 포스트모더니즘 영화 미학
포스트모더니즘 영화는 모더니즘 영화의 급진화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반(反)리얼리즘 성격을 그대로 계승하면서, 동시에 모더니즘의 친(親)리얼리즘 성격과는 완전히 결별한다.
모더니즘은 근본적으로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근대적 합리성의 맥락에 서 있다. 모더니즘 영화는 현대 사회의 성취와 쇠락, 기쁨과 슬픔, 희망과 불안, 안정과 소외의 내러티브를 전개한다. 그것은 이미지의 재현 가능성에 대한 합리적 회의주의(Skepticism)에 근거한다.
반면, 포스트모더니즘은 객관적 진리와 진보의 가능성을 단지 '회의'하는 것이 아니라 원천적으로 '부정'한다. 진리는 알 수 없으며, 재현은 불가능하다. 포스트모더니즘 영화에서 오직 가능한 것은 허구적 이미지 유희일 뿐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영화에서 현실과 허구의 관계는 결정적으로 역전된다. 모더니즘 영화는 이미지를 통한 현실의 재현 방식에 대해 회의하고 고민하는 반면, 포스트모더니즘 영화는 현실과 무관하게 이미지 그 자체를 즐기면서 '갖고 논다.'
포스트모더니즘 영화는 이미지의 콜라주와 상호텍스트의 혼성모방에 기초한다. 포스트모더니즘 영화는 직선적 내러티브를 거부하는 반내러티브 영화다. 그것은 이야기의 '자연스런' 전개보다는 이미지의 짜깁기와 실험적 유희에 집중한다.
모더니즘이 전위적 실험 영화에 몰두한 반면, 포스트모던 영화는 대중에게 익숙한 이미지와 장르적 관습을 재활용(Bruno, 1987)한다. 그들은 '발명'하지 않고 '발견'한다. 그들은 현실을 떠다니는 무의미한 이미지 기표의 시뮬라크라(simulacra)를 재조합할 뿐이다. 세상은 상품자본주의의 가벼운 시선과 차가운 비웃음, 육체적 본능에 의거한 감각적 열정과 스펙터클적 이미지로 둘러싸인 곳이다. 포스트모던 영화는 허구적 이미지의 스펙터클을 즐긴다.
포스트모더니즘 영화 속에서 시공간의 의미는 완전히 해체된다. 영화적 공간은 근원적으로 장소화를 거부한다. 무너진 시공간의 실재성 속에서 주체의 위치는 끊임없이 부유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현실의 객관적 재현을 부정하고 주체적 시점 자체를 완전히 해체한다. 포스트모던 영화는 다원적 질서와 복합적 시선의 영화다.
포스트모더니즘 영화는 이미지에 대한 관객의 참여와 개입을 중시한다. 시점의 혼재 때문에 관객은 영화 이미지를 하나의 관점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주체의 다원적 시점을 제시하기 때문에 관객에 의한 이미지 재구성의 시공간이 열린다. 관객은 끊임없이 이미지를 사유하고 이미지의 열린 공간 속으로 들어가서 이미지 구성에 참여하고 개입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포스트모던 영화는 주체-관객이 자본주의 소비 사회의 조현증(정신분열증) 속에 방치될 것인지, 아니면 가상의 열린 공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진정한 주체성으로 나아갈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3. 포스트모더니즘 영화의 주요 특징
포스트모더니즘 영화의 주요 특징은 다음의 5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무엇보다 먼저, 포스트모던 영화는 현실의 지시성(indexicality)을 부정한다. 이미지는 물질적 현실의 복원이라기보다 허구적 이미지 합성이 된다.
포스트모던 영화에서 실사와 애니메이션, 컴퓨터그래픽과 뉴스릴, 픽션과 논픽션은 이리저리 혼합된다. 리얼리티와 하이퍼리얼리티가 서로 뒤엉킨다. 패러디와 콜라주에 의해 이리저리 뒤섞인 허구적 이미지에 의해 현실은 재규정당한다. 영화 이미지는 현실을 지시하지 않으며, 오히려 현실을 산산이 부수어 버린다. 파편적 조각이 된 현실은 허구적 영화 이미지의 표면적 합성으로 전락한다. 로버트 저메키스(Robert Zemeckis)의 1988년작 〈누가 로저래빗을 모함했나?(Who Framed Roger Rabbit?)〉, 프랭크 밀러(Frank Miller) 원작을 로버트 로드리게스(Robert Rodriguez)가 연출한 〈신 시티(Sin City)〉(2005), 또한 영화 전체를 실제와 허구, 내러티브와 이미지의 융합적 메타포로 재구성해 내고 있는 장 뤽 고다르(Jean-Luc Godard)의 2004년작 〈아워뮤직(Our Music)〉 같은 영화들에서 이러한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포스트모던 영화에서 실사와 애니메이션, 컴퓨터그래픽과 뉴스릴, 픽션과 논픽션은 이리저리 혼합된다. 사진은 포스트모던 영화 로버트 저메키스(Robert Zemeckis)의 <누가 로저래빗을 모함했나?(Who Framed Roger Rabbit?)>(1988)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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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포스트모던 영화는 내러티브 중심성을 부정하고 이미지의 물질성을 중시한다. 포스트모던 영화는 정교한 내러티브와 서술적 인과관계에 기초한 리얼리즘 영화에 대한 전면 부정이다. 여기에서 내러티브화를 위한 극화되고 위계화된 조명, 숏·리버스 숏, 180도 규칙과 시점 숏, 이음매 없는 연속 편집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포스트모던 영화는 감각적 이미지와 스펙터클을 추구한다.
1980년대 이래 등장한 프랑스 '누벨 이마주(nouvelle image)' 영화들은 포스트모던 영화 이미지의 시각적이고 질료적인 특징을 잘 보여 준다. 장 자크 베네(Jean-Jacques Beineix)의 〈디바(Diva)〉(1980), 〈베티블루(37°2 le matin)〉(1986), 레오스 카락스(Leos Carax)의 〈소년, 소녀를 만나다(Boy Meets Girl)〉(1984), 〈나쁜 피(Bad blood)〉(1986), 〈퐁네프다리의 연인들(The Lovers on The Bridge)〉(1992), 뤽 베송(Luc Besson)의 〈그랑블루(The Big Blue)〉(1988), 〈제5원소(The Fifth Element)〉(1997) 등이 그것이다. 또한 피터 그리너웨이(Peter Greenaway)의 〈영국식정원살인사건(The Draughtsman's Contract)〉(1982), 〈필로우 북(The Pillow Book)〉(1996), 〈털시루퍼의 가방(The Tulse Luper Suitcases)〉시리즈(2003~2004) 등 일련의 영화들은 서사적 내러티브보다 이미지의 병치와 회화적 색감, 분할된 화면과 텍스트, 사운드와 이미지의 뒤엉킴 등을 중시한다.
포스트모던 영화의 이미지 중심주의는 뮤직비디오 같은 새로운 영상 장르에 대폭 전이되거나, 할리우드의 스펙터클 상업 영화에 대폭 수용된다. 조지 루카스(George Lucas)의 〈스타워즈(Star Wars)〉 시리즈(1977~2005),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의 〈죠스(Jaws)〉 시리즈(1975~1987), 〈쥬라기공원(Jurassic Park)〉 시리즈(1995~2001), 〈우주전쟁(War of the Worlds)〉(2005), 마이클 베이(Michael Bay)의 〈트랜스포머(Transformers)〉 시리즈(2007~2011) 등의 SF물과 스릴러물 등이 그것이다. 또한 현대 사회의 은유로서 섹스와 폭력의 미학을 선호하는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의 〈저수지의 개들(Reservoir Dogs)〉(1992), 〈펄프픽션(Pulp Fiction)〉(1994), 〈킬빌(Kill Bill)〉(2003~2004), 〈바스터즈(Inglourious Basterds)〉(2009) 등도 깊이 있는 의미를 탐구하기보다 시각적 스펙터클과 쾌락의 장르를 선호하는 포스트모던 영화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셋째, 포스트모더니즘 영화는 이미지 구성 방식에서 상호 텍스트성과 혼성모방, 패러디와 콜라주의 양식을 취한다. 모더니즘 영화에서는 장르와 장르 간 경계가 분명히 구분되었으나, 포스트모던 영화 속에서 과거와 현재, 장르와 기법이 이리저리 뒤엉킨다. 문학과 연극, 음악과 회화, TV와 비디오 등 온갖 매체는 혼합된다. 또한 멜로와 액션, 코미디와 공포물, 누아르와 SF 등 다양한 장르는 한솥밥처럼 뒤섞인다. 〈킹콩(King Kong)〉, 〈투명인간(The Invisible Man)〉, 〈드라큘라(Dracula)〉,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 〈슈퍼맨(Superman)〉, 〈스카페이스(Scarface)〉 등 어제의 고전이 된 1930년대의 히트작들은 1990년대로 소환되어 이리저리 짜깁기되고 오늘의 흥행을 위한 보증수표로 차용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기에 모든 영화는 이전 영화의 재탕이자 시리즈물로 전락한다. 〈스타워즈〉든 〈매트릭스(The Matrix)〉든 최소한 3편까지 영화를 재구성하고 짜깁는 것은 당연한 관례로 된다.
넷째, 포스트모더니즘은 시공간의 연속성을 해체하고, 불연속적이고 다차원적 시공간을 창출한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1982)는 원본과 복제본이 뒤섞인 채 실체를 알 수 없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혼성모방적 시공간을 보여 준다. 그것은 실제보다 더 실제적인 시뮬라크라,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복제인간이 살아가는 혼란스런 제3의 시공간, 즉 가상공간일 뿐이다.
또한, 〈매트릭스〉(1999)에서 충격적으로 전개되었던 흑색 가상공간의 녹색 데이터 흐름들은 가상현실을 잘 묘사한다. 여기에서 현실의 시공간적 질서는 완전히 해체된다. 사이버스페이스가 현실의 시공간을 점령한다. 포스트모던 영화는 현실과 허구가 뒤엉킨 다차원적 시공간의 질서를 보여 준다. 현실과 허구, 실재와 이미지, 기계와 인간, 안과 밖이 구별되지 않는 매트릭스가 포스트모던 영화의 세계다.
다섯째, 포스트모던 영화는 획일적 원근법을 거부하고, 주체의 다원적 시점을 제시한다. 혼란스럽고 무차별적인 기표 이미지의 콜라주 공세 앞에서 주체는 객관적 시점을 상실한다. 마이크 피기스(Mike Figgis)의 〈타임코드(Timecode)〉(2000)는 분할된 화면 속에서 서로 다른 네 가지 시점을 제시한다.
데이비드 린치(David Linch)의 포스트모던 영화들은 주관적이고 복합적 시점을 보여준다. 카메라 초점은 의도적으로 맞지 않으며, 화면 이미지는 명확히 규정되지 않는다. 〈이레이저 헤드(Eraserhead)〉(1977), 〈블루벨벳(Blue Velvet)〉(1986), 〈트윈픽스(Twin Peaks)〉(1992), 〈로스트하이웨이(Lost Highway)〉(1997), 〈멀홀랜드 드라이브(Mulholland Dr.)〉(2001) 등에서 린치는 주체의 혼란된 시점을그대로 노출시킴으로써 안정된 미국 중산층 사회의 위선과 허위에 대해 신랄한 비판과 야유를 보낸다.
〈비디오드롬(Videodrom)〉(1983), 〈더 플라이(The Fly)〉(1986) 등 데이비드 크로넨버그(David Cronenberg)의 일련의 영화들은 테크놀로지에 의한 인간 주체의 혼란상을 그린다. 인간과 기계, 인간과 타 생물체는 기이하게 결합된다. 주체는 부재하고 시점은 개방적이다.
R. 럿스키(R. Rutsky)의 말처럼, 포스트모던 시대는 기술과 예술이 융합하는 하이테크네(High-Techne)에 의해 규정된다. 그것은 인간과 기계가 상호 소통하는 포스트휴먼(Post-Human)의 시대다(Rutsky, 1999). 포스트모던 영화에서 인간 주체는 단일하게 규정되지 않으며, 테크놀로지와 상호 교접하는 특이한 국면을 형성한다.
4. 포스트모더니즘 영화 논쟁
포스트모던 영화를 어떻게 규정할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있다. 노엘 캐롤(Noel Carroll)은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 전통의 연장선 속에서 재현을 부정하는 다양한 실험 영화들을 포스트모더니즘 영화라고 규정한다(Carroll, 1985). 그에 따르면, 제이 하버먼(J. Hoberman)의 〈브로큰 허니문(Broken Honeymoon)〉처럼 익숙한 TV 프로그램이나 홈 무비 등을 상호 텍스트적으로 재구성하는 '해체 영화', 고다르의 〈내가 그녀에 대해 아는 두세 가지 것들(Two or Three Things I Know about Her)〉(1966), 피터 울른(Peter Wollen)과 로라 멀비(Laura Mulvey)의 〈스핑크스의 수수께끼(Riddles of the Sphinx)〉(1977)처럼 텍스트와 제작자가 끊임없이 영화 이미지에 끼어들면서 관객의 몰입을 저지하는 거리두기 효과를 발전시킨 '새로운 언어영화', 스카트 비(Scott B.)의 〈검은상자(Black Box)〉(1979)처럼 할리우드 상업 영화에 대한 패러디와 패스티시에 기초한 '펑크영화' 등이 포스트모던 영화다. 하지만 포스트모던 영화는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 실험 영화를 뛰어넘어 보다 대중적 차원에서 규정될 필요가 있다.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은 '후기자본주의'라는 시대 분위기 속에서 탈역사화되고, 파편화된 '향수 영화'와 '음모 영화' 부류들을 포스트모더니즘 영화로 규정한다(Jameson, 1984). 로만 폴란스키(Roman Polanski)의 〈차이나타운(Chinatown)〉이나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Bernardo Bertolucci)의 〈순응자(The Conformist)〉, 로렌스 캐스단(Lawrence Kasdan)의 〈보디히트(Body Heat)〉 등 탈역사화된 향수 영화, 시드니 폴락(Sydney Pollack) 감독의 〈코드네임 콘돌(Three Days of The Condor)〉, 크로넨버그 감독의 〈비디오드롬〉, 알란 파큘라(Alan J. Pakula) 감독의 편집증 3부작 〈클루트(Klute)〉, 〈암살단(The Parallax View)〉, 〈대통령의 음모(All the President Men)〉 등 음모 영화들이 후기자본주의의 시대 분위기를 보여 주는 포스트모더니즘 영화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제임슨은 영화의 양식과 스타일이 아니라 스토리와 플롯을 평가의 주요 기준으로 삼는다. 그는 내러티브 해체와 이미지 중심성을 특징으로 하는 포스트모던 영화의 형식적 특징을 간과한다.
제임슨은 포스트모던 영화들이 탈역사적 냉소주의에 기초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케이스 부커(Keith Booker)는 제임슨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지나친 폄하에 반대한다. 부커에 따르면, 포스트모던 영화는 탈역사적 냉소주의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예술적 창의성과 유토피아적 잠재력을 가질 수 있다(Booker, 2007).
포스트모던 영화는 자본주의 상업 영화의 균열과 틈을 효과적으로 공략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 할 포스터(Hal Foster)의 말처럼, 포스트모더니즘의 이중성, 즉 반동적 포스트모더니즘과 저항적 포스트모더니즘은 구분되어야 한다(Foster, 1985).
다른 한편, 앤드류 달리(Andrew Darley)는 1990년대 이후 디지털 시네마의 등장을 포스트모더니즘 미학과 관계에서 고찰한다(Darley, 2000). 달리는 최초의 3D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Toy Story)〉(1995)가 리얼리즘 재현 미학을 넘어서 포스트모던 미학을 잘 보여 준다고 평가한다.
디지털 시네마는 컴퓨터 합성과 시뮬레이션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 미학과 소통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미지 콜라주, 패러디, 혼성모방은 디지털 시네마의 수치 조작이고 합성적인 이미지 구성 방식과 일치한다. 디지털 시네마는 파편적 이미지의 재구성에 기초한 포스트모더니즘 미학을 새롭게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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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ynbee, Arnold(1965년) A Study of History, NewYork: Dell, p.57.
주제어
하이퍼리얼리티, 시뮬라크라, 상호텍스트성, 혼성모방, 콜라주, 포스트구조주의, 해체주의, 후기자본주의, 보드리야르, 들뢰즈
[네이버 지식백과] 포스트모더니즘 (영화 역사와 미학, 2013. 2. 25., 커뮤니케이션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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