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철학은 음악이나 문학 등과 함께 독일인이 세계문화에 기여한 것 중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일반적으로 독일인은 너무 이론적이라는 평이 있으나 사색하는 것과 철학하는 것은 독일인에게 오랜 역사적 전통을 근거로 한 국민성의 중요한 구성요소가 되었다. 독일 철학의 역사는 바로 독일인이 그때그때 처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생활태도를 깊이 반성하고, 또 인간을 에워싼 갖가지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을 줄곧 찾아온 노력의 발자취이다. 그것은 또 그와 반대로 그 사람이 놓인 역사적 상황을 가장 깊은 차원에서 파악하고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사색의 철저성과 또 이 철저성을 갖추어야 했던 상황의 특수성이 독일철학을 유럽뿐 아니라 다른 지역의 철학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개성과 중요성을 띤 것으로 만들었다.
배경
17세기 전반에 일어난 30년전쟁으로 국토 전체가 크게 황폐된 독일은 근대화 물결에서 다른 유럽 여러 나라보다 낙후되었다. 이 사실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독일문화 전반의 모습을 규정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한편으로는 중세 이래의 봉건적인 생활양식과 사회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민감하게 선진국인 영국과 프랑스의 새로운 문화에서 영향을 받는다는 ‘비동시적(非同時的)인 것의 공존’이라는 독일문화의 일반적 특징은 철학에서도 분명히 인정된다. 오히려 그와 같은 일반적 특징이 가장 전형적으로 나타난 부문이 바로 철학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비동시적인 것 사이를 상상력을 비약시켜 건너지르는 데 사상(思想)이라든가 철학 본연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 비동시적인 것 사이를 팽팽히 당기는 긴장의 강도가 자연히 독일 철학을 일반적으로 특징짓는 관념적 ·이상주의적 ·사변적 ·낭만적 ·내면적이라는 일련의 성질을 낳은 원인이 되었다.
독일 철학의 이와 같은 사색의 진폭은 또한 예로부터 독일인의 사고를 길러 온 풍토적 배경에 의하여 뒷받침되었다. 즉, 지중해인(地中海人)과는 달리 북방의 험한 풍토에서 살아 온 독일인에게는 자신을 에워싼 것에 대한 친화감(親和感)보다는 무한한 것에 대한 강렬한 희구를 갖게 된 것이다. 이 희구가 공간적인 형태를 취하면 F.W.니체를 통해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남방적(南方的) ·지중해적인 것에 대한 강렬한 동경이 되어 나타난다. 독일 철학은 비동시적인 것 사이에서 원시적인 시간의 회귀(回歸)를 구하고 험난한 풍토로부터 온화한 풍토로의 공간적 동경을 가진다. ‘유토피아’나 ‘고향’을 찾는 깊고도 철저하며, 때로는 극단적인 사색이 좋든 나쁘든 독일 철학의 일반적인 구조를 결정하였고, 영국 철학의 중용(中庸)이나 프랑스 철학의 명석(明晳)과도 다른 특징을 이루었다. 독일 철학의 문체에는 일반적으로 그것이 아무리 이상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어딘가 어둡고 깊은 정념(情念)이 숨겨진 것이 보통이다.
루터와 프로테스탄티즘
독일 철학의 연원(淵源)은 멀리 중세 말기의 M.에크하르트를 대표로 하는 독일 신비주의자들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것은 형식화된 스콜라 철학의 사변에 대하여 신(神)과 직접 합체(合體)하는 영혼의 풍부한 내면성을 획득하고, 그리스도교에 다시 생명을 불어 넣으려고 하는 운동이었다. 여기에 자리잡게 되는 풍부한 독일적 내면성의 원형(原型)은 16세기의 종교개혁자 M.루터에 이르러 완전히 꽃을 피운다. 로마 가톨릭 교회 지배에 반기를 들고, 오로지 신앙 원리에 의해 직접 신 앞에서는 내면적 ·자율적인 인격을 확립하고 프로테스탄티즘의 기초를 다진 루터는 이 일에 의하여 결정적으로 이후의 독일 철학이 기대고 설 정신적 풍토의 성격을 명확히 하였다.
학교철학의 전개
루터의 협력자인 P.S.멜란히톤은 루터가 거부한 아리스토텔레스 ·스콜라 철학을 도입하여 절충적인 프로테스탄트 신학체계를 정립하였다. 이 흐름은 당시의 지배권력과 결탁하여 형식화된 루터파(派) 정통교회(正統敎會)의 지배 아래 있는 독일 각지 대학의 학교철학으로 계승된다. 그러나 독일 철학의 창조성을 계승한 것은 오히려 이 흐름 밖에서 독일 신비주의의 강력한 영향을 받은 J.뵈메이며 다시 17세기 말의 유럽철학 전체의 문제상황을 근거로 하여 장대한 우주적 조화의 철학을 정립한 G.W.F.라이프니츠였다. 이 라이프니츠의 철학을 종래의 학교철학 구조에 기반을 두고 체계를 세워 라틴어 대신에 독일어를 사용함으로써 학교와 일반 사상계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친 사람은 C.볼프이다. 그는 독일 계몽주의 철학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칸트와 독일 관념론
라이프니츠와 볼프의 뒤를 이어 18세기의 범(汎)유럽적 문제상황을 받아들이고, 뉴턴의 근대철학과 루소적(的) 인격주의를 비판적 입장에서 조정하여 독일철학을 명실상부한 세계적 철학으로 만든 것은 I.칸트이다. 칸트에 의해 돌파구를 찾은 독일 관념론의 사색은 J.G.피히테로부터 F.W.J.셸링으로 계승되고, 독일 신비주의에서 경건주의(敬虔主義)로 이어지는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으면서 G.W.F.헤겔의 파우스트적인 전지(全知)의 철학으로 체계화된다.
헤겔철학의 붕괴
헤겔 철학에서 인간은 신의 전지에 맡겨진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에 대하여 L.A.포이어바흐 등 헤겔좌파는 사회적 현실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또 후기의 셸링은 개개의 현실적 인간으로서의 ‘실존’의 입장에서 각각 날카로운 비판을 하였다. 전자의 입장은 마르크스주의, 후자의 입장은 실존주의로 각각 계승된다. 또 헤겔에 반대한 A.쇼펜하우어의 비합리적인 의지의 철학은 다시 F.W.니체의 철저한 니힐리즘과 가치전환의 철학에 도달한다. 적(敵)그리스도를 자칭하는 니체는 루터와 정반대되는 인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신칸트학파와 생의 철학
19세기 후반 실증과학의 눈부신 진보는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았고, 실증주의 풍조는 종래의 철학전반에 퇴조경향을 촉진하였다. 그러나 이에 반하여 인식비판의 형태로 철학적 정신의 부흥을 기도한 것은 신(新)칸트학파였다. 이 학파 가운데 남서독일학파는 M.베버의 학문론(學問論)도 포함한 문화과학의 인식의 특징과 그 방법론을 둘러싼 토론에 의해서 시대에 대하여 커다란 문제를 제기하였다.
또한 마르부르크학파 출신인 E.카시러는 상징형식(象徵形式)에 관한 철학에 의하여 현대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W.딜타이, G.지멜 등으로 대표되는 생의 철학은 자연과학적 방법으로는 파악되지 않는 생의 측면을 이해하기 위한 폭넓은 한 걸음을 내디뎠다. 전자는 양해라는 독자적인 방법으로 정신과학의 특성을 밝히고, 또 특히 서구근대정신사(西歐近代精神史)에 관한 훌륭한 연구에 의하여 현대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현상학과 실존철학
‘사상(事象) 그 자체에로’라는 모토에 의해 신칸트학파적인 주관주의(主觀主義) ·구성주의(構成主義)를 객관적 본질직관(本質直觀)의 방향으로 뛰어넘으며, 한편 ‘엄밀한 학(學)으로서의 철학’으로 지향함으로써 생의 철학이 빠지기 쉬운 상대주의(相對主義)를 극복하고 새로운 방법으로서의 현상학(現象學)을 확립한 E.후설의 작업은 현대철학의 사고법에서 근본적인 혁명이라 할 수 있다. 또 그 영향은 세계적 규모의 것으로 오늘에 이른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제까지 일반적으로 볼 수 없었던 후설의 수많은 유고(遺稿)는 잇달아 간행되기도 하였으며, 근년에는 후설 르네상스라고 할 만큼 현상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후설의 본질직관을 구체적인 가치윤리학(價値倫理學)을 비롯한 철학적 인간학의 방향으로 전개시킨 사람으로는 M.셸러가 있으며, 이 계열에 속하는 사람으로는 N.하르트만의 신존재론을 꼽을 수 있다.
후설이 개척한 길을 보다 구체적인 인간파악의 방향으로 철저화한 대표적인 것으로는 K.야스퍼스와 함께 독일 실존주의(實存主義)를 대표하는 M.하이데거의 철학을 들 수 있다. 하이데거의 영향은 정신의학자인 L.빈스방거로부터 과거의 문하생이며 S.프로이트와 K.H.마르크스를 종합하여 독특한 유토피아론(論)을 펼친 H.마르쿠제까지 이른다.
현대 독일의 주목할 만한 비정통적 마르크스주의 철학자로서는 E.블로흐와 T.W.아도르노를 들 수 있다. 그들의 하이데거 못지 않은 난해한 문체에는 비동시적인 것 사이에 벌어진 독일인의 고뇌가 여실히 나타나 있다. 1960년대에 이르러 H.G.가다머는 인간의 현존재 및 실존의 해석학으로서, 하이데거의 공적은 인정하면서도 F.D.E.슐라이어마허와 딜타이 이래의 생(生)과 문화적 전통의 이해라는 지반(地盤)으로까지 다시금 해석학을 끌어내리는 방향을 제시하였다.
이런 경향은 인문 ·사회과학을 비롯 예술론 분야에까지 확산되었다. 이 가다머와 비판적 사회이론의 제창자인 J.하버마스 사이에서 벌어진 해석학과 이데올로기비판을 둘러싼 논쟁은 한때 큰 화제를 불러모았다. 하버마스와 같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영향을 받은 P.아펠은 영미계(英美系)의 기호론과 언어분석철학을 주시(注視)하면서 초월론적 혁신을 지향하였다. 이렇듯 최근 독일에서의 영미계 철학의 영향은 두드러지나 이와 나란히 실천철학(實踐哲學) 부흥의 외침도 높아 독일 본래의 전통으로 되돌아가려는 경향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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