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GUNGEUN)

故 오길승 교수님의 삶과 가르침

한신학 han theology 2016. 7. 1. 10:38

故 오길승 교수님의 삶과 가르침

"삶으로 실천을, 죽음으로 삶을 가르쳐주신 분"

2016년 06월 09일 (목) 23:56:49 재활학과 남세현 조교수  hs.ac.kr

오길승 교수님.... 

한신대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교정에서 전동스쿠터를 타고 다니시던 오길승 교수 님을 뵌적이 있을 것입니다. 직접 수업을 들 었던 학생들은 더 잘 알겠지만, 그저 무심히 지났던 분들에게는 오길승 교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모를 수도 있을 것 같아, 여러 분과 함께 더 나은 한신을,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고자 하셨던 교수님의 소중한 뜻을 이 지면을 빌어 잠시 나누고자 합니다. 



오길승 교수님은 고려대학교와 서울대학 교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하신 후 우리 나라 최초의 장애인종합복지관인 서울장애 인종합복지관에서 심리상담사로 근무하다 가, 보다 본격적으로 장애인을 위한 전문성 을 가지기 위해 미국 Southern Illinois 대학 원으로 유학하여 재활학박사학위를 취득하 고, 1993년 귀국하셨습니다. 



이후 1996년, 우리 대학 재활학과 교수로 부임하신 후 21년 동안 제자들과 함께 우리 나라 장애인들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기 위 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오셨습니다. 



교수님께서 처음 미국에 유학을 갔던 1989년, 선진국인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장 애인을 잘 치료해서 장애인이 더 적을 것이 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훨 씬 많은 장애인들이 거리에 다니는 것을 보 고 충격을 받았다고 자주 말씀하시곤 했습 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우리나라보다 더 통합적이고 차별 없는 사회환경이 장애인 들의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가능하게 한 것 이고, 장애가 치료되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 라 있는 그대로 존중받고 함께 해야할 대상 이라는 당신의 경험을 한국사회에 적용하 기 위해 귀국 후 학교 안팎에서 다양한 활 동을 기울여 오셨습니다. 



재활학 전공은 현장에서의 실천이 함께 하지 않으면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는 생각으로 보건복지부나 교육부와 같은 정부 부처는 물론,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한국 장애인단체총연맹, 한국장애인고용공단, 한 국장애인개발원과 같은 장애인 권익 단체와 공공기관,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을 비롯한 장애인복지기관, 한국직업재활학회, 한국아 동심리재활학회 등 학술단체에서 적극적인 협력사업과 연구활동을 기울여 오셨습니다. 



그리고, 2004년 부터는 이러한 생각과 활 동을 보다 직접적으로 실천해 나가기 위해 경기도의 지원을 이끌어내서 몸소 경기도 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와 경기도직 업개발센터를 설립하여 함께 운영해 오셨 습니다. 



그 결과 장애인을 격리시키는 보호작업장 일변도였던 1990년대에 지원고용 모델을 소 개하며 통합고용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을 열 고, 장애인 의무고용의 실효를 높이기 위해 적용제외 규정의 문제를 꼼꼼하게 짚어가며 개선을 추진한 일, 1998년에는 장애인고용촉 진법을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으로 개정시켜 전문적인 직업재활서비스의 근간 을 세워 갔던 일, 양하지 장애인의 직업 선택 폭을 넓히기 위해 부당한 1종 운전면허 취득 제한 문제에 맞서 싸워 결국 제한을 철폐한 일 등 장애인들의 삶이 실질적으로 개선되는 수많은 일들을 이루어 내셨습니다. 



앞서 소개한 경기도재활공학서비스연구 지원센터는 2004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전문적인 보조공학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 작한 모델로, 이후 서울시나 보건복지부가 참고하여 전국적인 보조공학서비스 확산과 작년에 제정된 ‘장애인·노인 등을 위한 보 조기기 지원 및 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의 마 중물이 되기도 하였고, 90년대 중반부터 남 보다 앞 서 주장하시던 “대형 교회가 설립 한 장애인복지관은 교회 옆에 카페를 차려 서 발달장애인들이 서비스 업종의 직업재 활 영역에 종사할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씀도 지금은 수많은 직업재활 기관에서 바리스타, 제과 제빵 영역의 사업을 실시하 고 있는 현실로 달성된 것을 보고 있습니다. 역시 2004년 농업과 관광업을 발달장애인 의 직업재활에 접목하기 위해 시작하셨던 경기도직업개발센터의 모델도 지금은 전국 에서 다양한 기관들이 새롭게 해석하고 접 목해서 발전시켜가고 있습니다. 



그 후 2010년대부터 하늘의 부름을 받으 시기 전까지는 또 다른 화두들을 우리사회 에 던지고 가셨습니다. 앞서 실행하셨던 직 업개발센터의 모델을 더 발전시켜 가족의 노후, 가족의 사후를 대비할 수 있도록 유럽 의 캠프힐과 같은 생활-직업 공동체를 만 들어 보겠다는 꿈, 장애인이 일만하다 죽게 할 수는 없다고 하시면서 장애인용 자전거 (핸드바이크, 특수자전거)를 합리적인 가격 으로 제작할 수 있는 사회적 기업과 여가· 운동 동호회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장애인 들이 건강하고 즐거운 삶을 누리도록 앞장 서시겠다고 차근차근 준비해 오시던 일... 



아마 그렇게 열성을 다해서 교수님이 만 들고 싶었던 세상은... 차별도 없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동등하게 즐거운 세상이었 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짧은 시간 정말 뜨겁게 불꽃처럼 치열한 삶을 살아오셨던 오길승 교수님께서 우리 곁을 너무 일찍 떠나셨음은 너무나도 슬프 고 비통한 일입니다. 



하지만 슬픔에 머물러 있지 않고 잠깐이 나마 그렇게 훌륭하신 분과 우리가 함께 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자랑스러워하고, 교수 님이 못 다 이루시고 남겨주신 과제들을 풀 어가는데 더 열심을 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한신에 남아 있는 우리들이 자신의 삶의 자리 어디에서나 장애인과 소외된 우리의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는 가치를 배우고 실 천하는 것... 아마도 교수님께서 우리 후학 들이 소중하게 이어받아서 완성해달라고 부탁하신 마지막 과제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