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회사 케이티 KT Corporation | |
산업 분야 | 통신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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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 1981년 12월 10일[1] (2002년 5월 21일 민영화) |
해체 | 2009년 6월 1일 : 케이티프리텔 |
분할 | KT IT서비스사업부 KT 위성사업부 |
시장 정보 | 한국: 030200 (1998년 12월 23일 상장) NYSE: KT 런던: KTCD (1999년 5월 26일 상장) |
국가 | 대한민국 |
본사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불정로 90 (정자동) |
핵심 인물 | 황창규 (대표이사 회장) |
자본금 | 1,564,498,835,020원 (2014년 12월 31일) |
매출액 | 23,421,673,407,150원 (2014년 12월 31일) |
영업이익 | -291,652,776,172원 (2014년 12월 31일) |
자산 총액 | 33,775,502,087,645원 (2014년 12월 31일) |
주요 주주 | 국민연금공단 8.22% |
종업원 | 23,371명 (2014년) |
웹사이트 | http://www.kt.com |
주식회사 케이티(株式會社-, KT Corporation)는 대한민국의 통신 회사이다. 유·무선 전화, 초고속 인터넷 등 유·무선 통신 서비스업이 주요 업종이다. 1981년 한국전기통신공사로 창립한 뒤 2001년 12월에 (주)KT로 상호를 변경하였다.[1] 2009년 6월 1일에 이동 통신 자회사인 KTF와 흡수 합병을 하였고,[2] 2011년 7월에 유·무선 통신 서비스 조직을 통합하였다.[3]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 등에 관한 법률상 독과점 사업자로서 시장지배적 사업자 지위 남용 규제를 받는다. 최대 주주는 국민연금공단(8.22%)이며 [4][5] 2대 주주는 NTT 도코모이다. 통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여는 GiGA 인터넷 가입자 100만을 가장 먼저 달성하였으며,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세계 최초로 5G를 구현하여 통신 선두주자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목차
[숨기기]연혁[편집]
민영화 이전[편집]
- 1981년 12월 10일 한국전기통신공사(영문 약칭 KTA)가 체신부에서 분리, 공사로 설립되었다. 통신업무 종사 체신부 직원 6만 8천명이 공사로 이동되었으며 육사출신 이우재 제11대 민정당 국회의원이 초대 사장에 임명되었다.
- 1982년 전화 회선 450만 개를 돌파하였다.
- 1982년 3월 29일 한국데이타통신주식회사(데이콤)을 설립하였다.
- 1982년 12월 15일 무선호출기 서비스(삐삐)가 1차로 250대가 승낙, 개통되었다.
- 1984년 1월 세계에서 10번째로 전전자교환기 TDX-1를 개발하였다.
- 1984년 무선통신서비스를 운영할 자회사로 한국이동통신서비스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 1986년 무선호출기 서비스 지역이 5대도시로 확대되었다.
- 1987년 전국전화자동화가 완성되었다.
- 1988년 무선통신서비스 자회사의 명칭을 한국이동통신주식회사로 변경하였다.
- 1991년 1월 1일 한국통신(공사)으로 약칭하였다.
- 1993년 11월 30일 전화 회선이 2000만 개로 확대되었다.
자회사 매각 후[편집]
- 1994년 자회사 한국이동통신주식회사(현 SK텔레콤)를 선경그룹(SK그룹)에 매각하였다.
- 1994년 6월 20일 한국 최초의 상용 인터넷 KORNET이 개통되었다.
- 1995년 한통사태(한국통신 노조사태)를 계기로 조백제 사장이 경질되고 이준 예비역 대장(육사 19기)이 신임 한국통신공사 사장에 임명되었다.
- 1995년 8월 5일 무궁화위성 1호를 발사하였다.
- 1996년 무궁화위성 2호를 발사하였다.
- 1996년 12월 이준 사장이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되었으며 후임으로 이계철 정보통신부 차관이 사장으로 임명되었다.
- 1997년 1월 한국통신프리텔(주)를 설립하여 다시 무선통신서비스인 PCS와 CT-2(씨티폰) 사업을 시작하였다.
- 1997년 정부투자기관에서 정부출자기관으로 전환되었다.
- 1997년 10월 1일, 이날 새로 시행된 공기업의경영구조개선및민영화에관한법률이 적용되기 시작하였다. (정부투자기관관리기본법의 적용대상에서 제외)
- 1998년 본사를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100에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3동 206으로 이전하였다.
- 1998년 12월 신규 상장하였다.
- 1999년 무궁화위성 3호를 발사하였다.
- 2000년 6월 한솔엠닷컴(주)의 경영권을 인수하였고, 12월 IMT-2000 사업권을 획득하였다.
- 2001년 IMT-2000 사업을 운영할 자회사 KT아이컴을 설립하였다.
- 2001년 이계철 사장이 사임하고 이상철 사장이 취임하였다.
- 2001년 4월 전화 발신번호서비스(CID)를 시작하였다.
- 2001년 5월 기업 슬로건 Let's KT를 시행하였다.
- 2001년 12월 한국통신에서 KT로 CI를 변경하였다. 전화국 명칭을 지사로 변경하였다.[6]
민영화 이후[편집]
- 2002년 5월 21일: 정부 소유 KT 지분 전량 매각으로 완전 민영화되었다.[7][8] SK텔레콤이 정부 보유 KT 지분 매각 과정에서 총 발행 주식의 11.34%를 비밀리에 매집하여 최대 주주가 되었다.[9]
- 2002년 5월 24일: 울릉도에 기지국이 설치되어 독도에서 휴대폰이 개통되었다.
- 2002년 5월 25일: 2002년 5월 21일에 정부 소유 KT 지분 전량 매각된 후 새 주인에게 주권이 교부되고 교환사채(EB)가 발행되었다.[7]
- 2002년 7월: 이상철 KT 사장이 정보통신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 2002년 8월 20일: 이용경 KTF 사장이 민영화 초대 KT 사장에 공식 취임하였다.
- 2002년 10월: 이용경 사장이 2003년 국제전자상거래연합회(GBDe, Global Business Dialogue on Electronic Commerce) 단독 글로벌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 2003년 1월: KT와 SK텔레콤이 상호 보유 지분을 맞교환하여 지배 관계가 청산되었다.[7]
- 2004년: 봉사단을 7천 명 수준으로 늘렸으며, 청각 장애아 소리 찾기, 외국인 근로자와의 Host Family 결연 등 사회 공헌 활동을 확대하였다.
- 2005년: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KT의 계열사는 12개이며, 자산총액은 29조 3150억 원으로 재계 대기업 순위 8위에 올랐다.
- 2005년 8월 19일: 남중수 KTF 사장이 민영 KT 2기이자 9대 사장으로 취임하며 "원더경영"을 경영기조로 밝혔다. 이날 주주총회에서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이 사외이사로 선임되었다.[10]
- 2005년 12월 28일: 개성공단 남북통신 개통 및 개성지사를 개소하였다.
- 2007년 3월 30일: 제일FDS를 인수하였다.
- 2007년 12월: 사장추천위원회가 남중수 사장을 제3기 사장으로 추천하였다.[11]
- 2008년 2월: 남중수 사장이 2011년까지 임기로 민영 제3기 사장이자 제10대 사장으로 공식 취임하였다.
- 2008년 11월: 남중수 사장이 인사 청탁 혐의로 매달 1백~2백만원을 받았다는 배임수재 혐의로 2008년 9월에 이미 구속된 조영주 KTF 사장에 연달아 구속되었다.[12]
- 2009년 1월: 이석채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13] 하였으며 All New KT를 슬로건으로 발표하였다.[14]
- 2009년 1월: 이석채 사장이 자회사 KTF와의 합병을 선언하였다.
- 2009년 3월: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자회사인 KTF와의 합병에 대해 조건부 승인을 받았다.
- 2009년 4월: 새로운 브랜드 QOOK(쿡)을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기존 메가패스는 QOOK 인터넷으로, 메가TV는 QOOK TV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KT - KTF 흡수 합병 이후[편집]
- 2009년 6월 1일 자회사인 KTF와 흡수 합병하였다.
- 2009년 7월 기업 슬로건 All New KT를 olleh kt로 변경하였다.
- 2009년 8월 13일 자회사인 KT FDS를 동양그룹에 매각하였다.
- 2009년 10월 첫 유무선 통합 상품인 FMC(Fixed Mobile Convergence) 서비스인 QOOK&SHOW 를 출시하였다.[15]
- 2009년 11월 한국 최초로 애플사의 아이폰을 도입하였다.
- 2009년 12월 한국 최초 3W(Wi-Fi, WiBro, WCDMA) 핸드폰인 쇼옴니아를 출시하였다.
- 2010년 4월 금호렌터카를 인수하였다.
- 2010년 6월 클라우드 스토리지 Ucloud 서비스를 출시하였다.
- 2010년 8월 31일자로 다우 존스 지속가능지수 월드(Dow Jones Sustainability Index World)에 처음으로 편입되었다.[16]
- 2010년 9월 애플사의 '아이폰4'와 3G 무제한데이터 요금제를 출시하였다.[17]
- 2010년 11월 11일,11월 12일 : 대한민국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 주관통신사업자로 선정되었다.[18]
- 2011년 1월 25일 : 유선의 ‘쿡(QOOK)’, 무선의 ‘쇼(SHOW)’라는 브랜드를 버리고 ‘올레(olleh)’라는 단 하나의 이름을 사용하여 유선의 ‘올레 홈(olleh home)’, 무선의 '올레 모바일(olleh mobile)’이라는 브랜드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19]
- 2011년 2월 10일 : BC카드 지분 20.05%를 인수하여 2대 주주가 되었다.[20]
- 2011년 9월 8일 : KT가 2011년 다우존스지속가능경영지수(DJSI)가 선정한 유무선통신분야의‘글로벌 슈퍼섹터 리더’1위 업체로 선정되었다.[21]
- 2012년 1월 3일 : 서울 전 지역 LTE 시작, 동시에 2G 종료
- 2012년 1월 18일 : 6대 광역시, 수도권 17개시, 제주도 2G 종료
- 2012년 2월 2일 : 지방 58개시, 2G 종료
- 2012년 3월 19일 : 대한민국 전 지역 2G 종료
- 2012년 9월 13일 : KT가 2011년에 이어 2012년에 다우존스지속가능경영지수(DJSI) 평가에서 유무선을 통합한 통신 분야에서 글로벌 슈퍼섹터 리더에 올랐다.[22]
- 2013년 9월 15일 KT가 1.8 GHZ 대역에서 20 MHZ 폭으로 광대역 LTE를 시작했다
- 2014년 1월 27일 황창규 대표이사 취임
주주 및 이사회(2010년 말)[편집]
1997년 IMF 사태에 따라 경제위기 수습을 위한 재원 마련으로 공기업 매각이 추진되어 1998년 12월 한국증권거래소, 1999년 5월 뉴욕증권시장에 상장되었다. 전기통신사업법에 의해 기간통신사업자에서 외국인 주주의 의결권을 다 합쳐도 총 의결권의 49%를 넘을 수 없게 되어 있어 2010년말 기준으로 내국인의 의결권 총합이 대략 51퍼센트이고 외국인의 의결권 총합이 대략 49퍼센트이다. 상법상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와 우선주를 포함하면 외국인 주주 비율이 50%를 넘는다.
국내 대주주[편집]
국민연금공단 6.69%, 자사주 6.85%, 우리사주조합 1.56%, 기타 국내주주 34%
외국인 대주주[편집]
템플턴 글로벌 어드바이저 리미티드 4.71%, 브랜디 TM 인베스트먼트 파트너즈 4.99%, 캐피탈 리서치 매니지먼트 컴퍼니 3.99%, 트레이드윈즈 글로벌 인베스터즈 엘엘씨 4.70%, 일본 NTT 도코모 5.46%, 실체스터 인터내셔널 인베스터즈 엘엘피 5.1%
이사회[편집]
이사회는 사내이사 3명, 사외이사 8명 총 11명의 이사로 구성(2013년 3월 기준)되어 있다. 사외이사는 사외이사 전원, 사내이사 1인으로 구성된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서 선임하고 있으며, 임기는 3년 이내이다. 이사회 의장은 사외이사 중에서 선출되며, 임기는 1년이다. 이사회 내에는 5개 상설 소위원회와 2개 임시 소위원회가 있다. 이사회는 필요한 경우 별도의 위원회를 추가 설치할 수 있다. 사내이사(2명)로는 황창규 대표이사, 표현명 이사가 있고, 사외이사(7명)로는 이사회 의장인 김응한 이사와 이춘호, 이현락, 박병원, 성극제, 차상균, 송도균 이사가 있다.[23]
그룹 경영 체계 및 계열사[편집]
유무선 통신 전문 공기업에서 출발한 KT는 민영화 이후 2015년 그룹 매출 40조원 달성을 목표로 렌탈, 부동산, 경비, 교육, 신용카드 등 다양한 비통신 시장으로 진입하고 있다. 2015년 9월 30일 기준으로 BC카드 등 41개의 그룹사[24] 를 운영중이다.
- KT service
논란[편집]
인터넷 종량제 논란(2003년~2005년)[편집]
2003년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의 종량제 찬성 인터뷰에서 촉발한 종량제 논의가 EBS 인터넷 수능 동영상 강의 등 트래픽 유발 서비스 확대와 스팸 메일, 인터넷 중독 등의 사회적 논란 등을 겪으면서 2005년까지 계속되었다. 2005년 KT 이용경 사장이 정보통신부 장관의 네티즌과의 대화에서 밝힌 인터넷 종량제 정책 추진 등에 부응하여 인터넷 요금의 종량제 필요성을 함께 주장하여 사회적인 논란이 확대되었다.
2G 사용자 강제 종료[편집]
KT는 미래창조과학부의 승인으로 2011년 12월 8일 2G 서비스 종료를 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기존 01x 번호를 사용하는 사용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강제 종료를 한다는 논란이 있다. 12월 8일 이후 KT의 2G 서비스는 전부 종료될 예정이었으나 서울행정법원의 결정으로 추후 연기되었으나 12월 26일 서울고등법원의 즉시 중단 가능 결정으로 2012년 1월 3일 오전 10시 서울지역부터 2G서비스가 종료되고 LTE서비스가 시작되었다.
낙하산 인사 논란[편집]
정관계 인사들의 KT 고위 임원에의 연이은 취임이 2010년 12월 김은혜 전 청와대 대변인의 KT 전무 취임으로 사회적으로 확산되었다. 또한 이를 비판한 직원의 발언이 PD 수첩 등에 방영 된후 해당 직원에 대한 보복 인사에 대한 논란도 있다.[50][51][52] 이석채 회장은 비통신 전문가인 외부 인사 영입에 대한 논란에 대해 2011년 1월 20일 기자 간담회에서 내부에 인재가 없어 외부 영입을 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는 입장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신사업을 할 수 있는 KT 내부 직원은 없다고 단언하며 외부 인사 영입 논란을 일축하였다.[53][54]
- 이석채 회장 - LG 전자, SKC&C 사외 이사 역임, "회사와 경쟁관계에 있는 회사 및 그와 공정거래법상 동일한 기업 집단에 속하는 회사의 임·직원 또는 최근 2년 이내에 임·직원이었던 자는 회사의 이사가 될 수 없고, 이사가 되더라도 그 직을 상실케 하는" KT의 기존 정관을 삭제 후 취임.[55]
- 이춘호 사외 이사 - 이명박 정부 초대 여성부 장관 후보, 부동산 투기와 재산 축소 의혹으로 후보 사퇴
- 허증수 사외 이사 -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기후변화·에너지TF 팀장으로 대운하 사업 등 담당, 인천시로부터 법인카드 제공, 향응 수수 논란으로 인수위 사퇴
- 박병원 사외 이사 - 청와대 경제 수석
- 석호익 전 부회장 - 전 정보통신부 정책홍보실장, 18대 한나라당 경북 고령‧성주‧칠곡 국회의원 후보(낙선)
- 김규성 KT엠하우스 사장 - 이명박 대통령 후보 캠프 모바일 팀장, 대통령직인수위 경제2분과 상임자문위원
- 김은혜 - 전 그룹미디어커뮤니케이션 전략실장 전무, 현 커뮤니케이션실장 (전무) - 청와대 대변인
- 서종률 (전) KT 미디어본부장 - 대통령직인수위 경제2분과 전문위원
- 이태규 KT 경제경영연구소 전무 - 청와대 대통령실 연설 비서관
- 윤종화 KT캐피탈 감사 - 재정경제원 정책심의관, 청와대 경제행정실 행정관
- 최수영 ktis 감사 - 전 한나라당 성북을 지구당 위원장
- 김성익 스카이라이프 감사 - 전 5공화국 공보비서관
- 장치암 커스토머부문 상무보 - 청와대 민정수석실 선임행정관
- 임현규 부사장 : 전 MB 특보
- 윤정식 부사장 : 전 청주MBC 사장-김재철 전 MBC 사장 핵심
- 이석조 kt 렌탈 경영고문 이석채 사장 사촌 동생
- 홍사덕 kt 경영고문 전국회의원 친박라인
- 김병관 kt 경영고문 전 국회의원 친박라인
- 이성해 kt 경영고문 전 정통부 국장
- 허준영 kt 경영고문 전 경찰청장
- 김정관 kt렌탈 마케팅홍보총괄본부장 전 박근혜 후보 캠프 미디어팀장
4대 종편 투자 정부 개입 의혹[편집]
2011년 11월 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KT가 100% 지분을 갖고 있는 자회사인 KT캐피탈은 2011년 3월 9일 조선일보 종편에 20억원을 출자했다. 이어 4월 1일에는 중앙일보와 매일경제 종편에 각각 20억원씩 출자했고 엿새 뒤인 4월 7일에는 당시 납입 자본금을 완납하지 못해 종편 승인이 연기된 동아일보 종편에 앞의 종편들보다 많은 23억9천만원을 출자했다.
문제는 KT가 2010년 말까지만 해도 전담팀에서 사업성을 평가한 결과 사업성이 없어 종편에 투자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는 점에서 입장을 바꿔 4대 종편 모두에 무더기투자를 한 배경에는 정부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낳고 있다.[56]
인력퇴출 프로그램과 노동자 사망에 관한 논란[편집]
2012년 4월 25일 노동시민사회단체인 KT노동인권센터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KT에서 인력퇴출프로그램이 시행된 2006년부터 2012년까지 6년 동안 KT 재직·퇴직 노동자 가운데 204명이 숨졌다. 이 중 재직중에 숨진 노동자가 110명이며 퇴직자(58세 이하)가 94명, 사내협력업체 12명이다. 사망 원인별로는 백혈병 등 각종 암으로 숨진 노동자가 84명으로 가장 많았고 돌연사(뇌출혈·심장마비)가 62명, 사고 및 기타 질병 44명, 자살 14명이었다. KT노동인권센터는 인력보충 없는 강제명퇴와 무한경쟁 등을 초래한 민영화가 노동자들의 잇따른 사망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고용노동부는 2011년 10월 국정감사에서 KT 노동자의 인권침해 문제가 제기된 후 노조의 고소·고발이 이어지자 2012년 2월부터 한 달간 150여개 지사를 대상으로 특별감독을 벌였지만 2012년 4월까지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고 있다.[57]
각주[편집]
- ↑ 가나 http://100.naver.com/100.nhn?docid=186060
- ↑ “KTF, 1일 KT와 공식 합병... 역사속으로 사라져”. 아주경제. 2009년 5월 31일.
- ↑ 신혜선 (2011년 7월 4일). “KT-KTF 합병 2년만에 '유무선망 조직통합'”. 머니투데이.
- ↑ 인용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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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이름을 가진 주석에 제공한 텍스트가 없습니다 - ↑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정권마다 논란 중앙일보 2011년 4월27일
- ↑ 황상진. KT로 새출발…전화국명칭 없애기로 . 한국일보. 2001년 12월 11일.
- ↑ 가나 다 윤휘종·김현아. ('KT 민영화 3년' 진단 - 1) 민영화는 세계와의 약속이었다. 아이뉴스24. 2005년 5월 22일.
- ↑ 전혜영. KT 민영화 10년 현주소…뛰는 '공룡' 됐나. 머니투데이. 2012년 5월 21일.
- ↑ "SKT, 레임덕 틈탄 정책도전이냐"
- ↑ KT, 남중수 사장 취임 - 조선일보 2005년 8월 19일
- ↑ - '서두르는 KT'…남중수 사장 연임 논의 시작-노컷 뉴스 2007년 10월 26일
- ↑ KT 남중수 사장 구속…풀리지 않는 의문들 노컷 뉴스 2008년 11월 5일
- ↑ KT 사장후보 ‘낙하산’ 논란…추천위해 정관도 바꿔 경향신문
- ↑ “KT, 이석채 사장 선임…오늘 인사 단행”. 디지털타임스. 2009년 1월 14일.
- ↑ “KT 유무선 컨버전스 서비스 QOOK & SHOW 출시”. 뉴시스. 2009년 10월 14일.
- ↑ “COMPONENTS - DJSI WORLD and DJSI WORLD EX US”.
- ↑ “KT, 와이파이 이어 3G데이터도 '무제한서비스’”. 경제투데이. 2010년 9월 9일.
- ↑ “kt 원더풀, 코리아원더풀”. 다음 글자 무시됨: ‘ 2010-11-15 ’ (도움말); 다음 글자 무시됨: ‘문화일보 ’ (도움말)
- ↑ “[신년기획/2011 경영전략③] KT, 통합효과·고객만족도 향상에 주력”. 2011년 1월 4일. 다음 글자 무시됨: ‘ 디지털데일리’ (도움말);
- ↑ “[KT,우리·부산銀 등과 본계약 체결···]”. 2011년 2월 18일. 다음 글자 무시됨: ‘ 머니투데이’ (도움말);
- ↑ “KT, 'DJSI 통신분야' 세계 1위 선정”. 2011년 9월 16일. 다음 글자 무시됨: ‘ 조선비즈’ (도움말);
- ↑ “Kt-gs건설-롯데쇼핑, ‘지속가능 성장력’ 세계 최고 인정”. 2012년 9월 13일. 다음 글자 무시됨: ‘ 조선비즈’ (도움말);
- ↑ http://www.kt.com/ir/gov_03.jsp
- ↑ http://dart.fss.or.kr/dsaf001/main.do?rcpNo=20151116001665
- ↑ http://www.k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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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ttp://www.vp.co.kr/home/index.html
- ↑ http://www.initech.com/www/html/index.html
- ↑ http://www.smartro.co.kr
- ↑ http://www.centiosglobal.com/
- ↑ http://www.ustream.tv/
- ↑ http://www.ktinnoedu.com/
- ↑ http://sports.kt.com/
- ↑ KT, '김은혜 전무 낙하산' 비판한 직원 보복인사 논란 프레시안 뉴스 2011년 2월 21일
- ↑ 전무 된 39세 김은혜 前청와대 대변인… '낙하산 논란' 조선일보, 2010년 12월 2일
- ↑ 민주 "김은혜 前 靑대변인 KT 낙하산 인사" 비판 한국일보,2010년 12월 1일
- ↑ KT는 MB정권의 낙하산 집합소? KT 이석채 회장의 낙하산 인사 '현재 진행형'시사코리아 2011년 1월 28일
- ↑ “낙하산 최소 40명은 될 것” 파문, 올레(olleh)~ KT “실세들 올래?” 주간조선 2010년 12월 6일
- ↑ KT는 MB정권의 낙하산 집합소? 시사코리아 2011년 1월28일
- ↑ KT, 4대 종편에 무더기 출자. 정부 입김 의혹《뷰스앤뉴스》2011년 11월 9일 박태견 기자
- ↑ KT 6년간 204명 사망…사법조치 없어 뉴시스, 2012년 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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