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철학(技術哲學)은 종교철학, 과학철학, 정치철학, 사회철학 등으로 세분화 할 수 있는 철학의 한 분야로, 현대 기술에 대한 철학적 물음을 제기함으로써 현대 기술이 나아갈 방향을 탐색하는 학문이다.
출현[편집]
오랜 시간 동안 별달리 물을 것이 없는 삶의 영역으로 받아들여지던 기술은 17세기 과학혁명을 지나 19세기 산업혁명에 이르러서야 철학과 만나게 되었다. 산업혁명 이래 현대 사회의 변화 속도가 매우 빨라지고, 이러한 급격한 변화에 직면한 산업화시대의 사람들은 두가지 반응을 보이게 된다. 일부는 빠른 발전 속도를 긍정하는 입장을 가졌고, 또 일부는 기술의 폭발적인 발전이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해롭다고 생각하는 입장이었다. 이들은 기술의 발전이 너무 빨라서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생각은 세계 1, 2차 대전이후 더 굳어지게 된다. 이러한 기술에 대한 비관론이 철학적 사유로 이어지게 되어 결국 현대기술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들의 좀더 정교화 되면서 유럽을 중심으로 기술철학이 본격적으로 출현하게 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서 기술 철학회가 창립되면서 본격적인 철학의 분과로 독립하였다.
기술철학의 유관분야[편집]
기술사회학[편집]
기술사회학은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실증적으로 연구, 분석하기도 하고, 개별기술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개발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사회는 어떤 기여를 했는지를 심층적으로 연구한다. 기술사회학의 연구성과는 기술이 무엇인가를 묻는 기술철학적 논의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과학철학[편집]
과학철학에서의 연구 방법론이 기술철학에 많이 차용되고 있고, 핏처럼 아예 기술철학이 과학철학을 모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공학윤리[편집]
공학윤리에서는 현대기술이 발전하면서 이전의 윤리학적 논의로 해결할 수 없는 새로운 문제들을 다루기 때문에 기술철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공학자가 직면하는 여러 가지 딜레마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 기술이 주는 유익이 무엇이며 어떤 기술이 좋은 기술인지에 대한 고찰을 바탕에 둔다면 보다 지혜로운 판단에 이를 가능성이 많다.
생명의료윤리[편집]
생명의료윤리는 단순히 의료전문가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현대의학의 혜택을 받는 모든 사람들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들을 다룬다. 사람들이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삶과 죽음에 대한 신념과 원칙들은 새로운 기술적 환경에서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과학기술정책학[편집]
진정으로 사람을 위하는 과학기술발전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기술이 무엇인지, 그 발전의 혜택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연관된 위험을 어떻게 대비하고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숙고가 있어야 한다. 기술철학의 이론들이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그 논의들은 과학기술정책을 수립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기술철학의 흐름[편집]
1.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 까지는 고전적 기술 철학자들이 의견이 주를 이루었다. 고전적 기술 철학자들은 과학기술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을 말한다. 이들은 엘륄, 하이데거, 일리치, 요나스, 마르쿠제로 대표된다. 각 학자들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한스 요나스는, 목적과 수단이 순환적이고 변증법적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고 말하였다. 앞서 말하였듯이, 기술이란 상위 목적을 위한 수단이라고 인식되어 왔는데, 현실에서는 수단이 새로운 수단을 요구하고 목적을 변형 시키는 현상이 많이 일어난다. 이를 가리킨 말이다.
하이데거는 현대 기술의 본질의 '닦달' 이라고 일컬었다. 기술은 존재하는 것들을 그저 부품으로 간주한다. 하이데거가 주장하는 본래 기술의 의미는 '숨겨진 진리가 드러나는 통로 혹은 자기 자신을 내 보이는 방식' 이다. 그러나, 현대 기술은 존재가 드러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지 않는다. 끊임없이 자원을 요구(닦달)하는 것이다. 또한 하이데거는 기술의 본질을 의지로서의 기술이라고 정의한다. 이 때의 의지란, 기술이 존재들을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자원으로 만드는 의지를 말한다. 이렇게 자원을 만드는 데는 지식이 필요하며 이 때의 이 지식을 과학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하이데거에 의하면, 기술이 과학보다 선행한다고 말할 수 있다.
엘륄은 '기술의 자율성' 이라는 말을 사용한 학자이다. 여기서 자율성이란, 인간이 기술의 거대한 시스템에 개입할 수 없으며, 그러한 상태로 기술은 그 관성에 따라 계속해서 발전에 간다는 것을 말한다. 기술은 인간이 조정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에른스트 캅은 모든 기술이 인간 몸의 연장 이라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기술이 들어올 때 마다, 사회 세력들의 힘의 구조가 바뀌며, 그에 따라 사회 구조 또한 바뀐다고 말한다. 변화된 사회구조는 또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고 발전시키게 된다. 이렇게 발전된 기술들 중에는, 인간의 힘으로 조정 가능한 것도 있지만, 지나치게 발전한 대규모 시스템은 인간의 능력을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상의 고전적 기술 철학자들은, 그러나, 기술을 하나의 거대한 실체로 보기 때문에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비판만으로 그들의 주장을 끝내버린다. 그리하여
2. 20세기에는 기술철학자들이 대안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대안'을 내놓기 위하여 일차적으로, 기술을 하나의 거대한 실체로 보기보다는 개별 기술에 대하여 논의를 시작한다. 20세기 기술철학자들의 결론은 좋은 기술을 많이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었으며, 좋은 기술의 성격으로 첫 번째, 과거 기술자들의 기능을 소외시키지 않으며, 두 번째, 민주적이어야 하며, 세 번째, 사회 문화적 영향과 간접적인 결과까지 폭넓게 고려해야 함을 들었다.
20세기 철학자 보르크만은 힘만 드는 단순한 일들은 기계에 맡기고, 사람냄새가 나는 기술둘은 기계화 하지 말자고 주장했으며,
위너 스클로브 핀버그 기술이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더버그는 기술의 생태학을 주장하였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좋은 기술의 세 번째 요건의 내용이며, 기술 개발 시에 장기적이고 간접적인 영향까지 고려해서 개발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20세기 기술철학자들의 주장 또한 그리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들의 주장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이원화된 경제체제가 형성 되어야 하고, 기술개발을 억제해야 하는 등의 부담을 져야하기 때문이다.
기술들은 새롭게 등장하고, 그에 따라 기술철학에서도 새로운 의문과 주장이 제기된다. 예를들어 최근 이목이 집중되는 '나노 기술'에 대해서는, 나노 입자 관찰 과정에서 그래픽의 진실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참고 문헌[편집]
- 돈 아이디 (1998). 《기술철학》. 철학과현실사.
- 한양대학교 과학철학교육위원회 (2010).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 한양대학교출판부.
각주[편집]
기술 철학의 흐름 출처.
- [기술속사상] 기술이 언제나 사람에게 지고 만다고?/홍성욱[1]
- [기술속사상] 현대기술아 제발 ‘닦달’하지 마/손화철[2]
- [기술속사상] 기술 발전 거역할 자유도 허하라!/손화철[3]
- 한양대학교 과학철학교육위원회 (2010).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 한양대학교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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