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おさん)

[스크랩] 강좌2-1:디아코니아의 구약성서 근거

한신학 han theology 2015. 4. 13. 14:39
 

 

 

한국디아코니아연구소 1회 디아코니아학 제2강좌


2006. 9. 14. 목


<디아코니아: 성서적 근거I>

 


I. 디아코니아-성서적 신학적 근거와 방향설정



제2강의 주제는 디아코니아의 성서적 근거에 대한 내용입니다만 강좌에 들어가기 전에 앞서 김애영 교수의 논문에서 언급한 내용을 소개 해볼까 합니다.

 

이 논문은 한신학술원 신학연구소의 심포지움에서 발표된 것으로 [신학연구] 48호에 게재 되었는데 제목은 <남북 교류에 있어서의 종교의 역할과 전망-기독교를 중심으로>입니다.


이 논문에서 주장하고 있는 내용은 이렇습니다. 북의 종교지도자들이 남측의 교회 지도자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은 사회복지나 봉사 활동에 대한 것이지 남측의 교회가 직접 북한에서의 전투적 선교활동에 가담하는 것을 바라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일테면 북한의 종교단체들은 남한과의 국제종교기구들의 인도적 지원 덕택으로 1990년대 후반 이후부터 여러 가지 사회활동을 전개하게 되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봉사 위주의 신앙공동체 기능을 강화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조선그리스도교련맹의 활동을 세계개혁교회연맹에서는 <디아코니아적 선교활동>이라고 지칭 한다는 것을 말하면서 그것에 대한 설명으로 사회복지와 디아코니아학에 대한 개념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덧붙여서 사회복지라는 개념은 1530년 경 종교개혁 과정 중에 나온 것인데 독일에서는 1920년대 이래로 기독교 사회복지 실천의 활성화가 이루어지면서 19세기 중반 이래로 기독교 신학에 있어서 발전되어 온 디아코니아학이 오늘의 사회복지학의 근간이 되었다는 것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저자는 이러한 디아코니아학이 남북 기독교의 사회실천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향후의 디아코니아학은 한국 교회 내에서의 화두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는 확신을 가지면서 논문에 대한 간략한 소개는 접을까 합니다.


그러면 제2강의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제2강은 크게 디아코니아의 성서적/신학적 근거에 대한 방향설정과 구약성서에 나타난 디아코니아의 근거에 대해서 강의를 할 것입니다.

 

먼저, 디아코니아의 성서적/신학적 근거에 대한 방향설정에 대해서 10개의 테제를 가지고서 설명을 드리겠는데 첫 번째 테제로 들어갑니다.

 

제1강에서 신학적 결핍요소를 설명하면서 두 번째 요소 중에 신학작업가설에 대해서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성서는 말씀으로 시작을 해서 설교가 있고 실천이 행해져야 하는데 그것은 어느 하나의 요소가 강조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과 설교와 실천이 통합적인 과제로 이루어지면서 세 개의 요소가 귀납적이면서 연역적으로 순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신학작업가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신학작업가설에서는 목사를 중심으로 하는 말씀이 강조되면서 실천에 있어서의 디아코니아적인 요소가 사람들에게서 점점 멀어져 갔던 상황을 설명한 것이 그 내용이었습니다.

 

말씀만이 강조된 것이 아니라 실천도 강조 되었던 디아코니아의 성서적 근거에 대해서 혹은 그 출발점에 대해서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디아코니아의 성서적 근거를 위한 출발점은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가 있는데 하나는 신/구약성서를 읽으면서 디아코니아 현장과 조직에 대해서 제기되는 질문으로 성서를 읽으면서 우리의 행동을 위한 방향규준과 동기들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오늘의 디아코니아의 실제 상황으로부터 나오는데 개별 혹은 다수의 그리스도인의 행동으로부터 교회와의 직접적인 연결 없이 나름대로의 희망 안에서 성서에 대한 질문들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즉 현재의 실제상황에 대하여 성서의 사신이 대답을 주게 된다는 것인데 이것은 교회가 무엇이냐? 혹은 디아코니아가 교회의 본질이냐? 에 대한 디아코니아의 교회론적인 주체문제, 교회와 디아코니아와의 직접적 관련성, 말씀의 선포와 선교의 디아코니아 관련성, 사역자들의 교회와의 관련성과 그리스도적 동기문제 뿐만 아니라 교회의 디아코니아와 사회복지국가와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근본적인 성찰이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테제는 그리스도교의 태동역사는 오늘의 행동에 대한 준거점과 대화의 중요성을 내포하면서 중요한 의도와 기준들을 담고 있는데 그것은 디아코니아적인 단초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테면 오늘날에 직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에 대한 압박에 대해서 미래와 관련된 방향설정에 대해서 그리스도교적 에토스를 부여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그래야만이 인식론적 상황분석과 행동방향에 가능한 한 결과들이 나타나면서 기독교적인 에토스가 방향기준과 동기부여를 획득해 간다는 것입니다. 방향기준과 동기부여에 대해서 자동차를 예로 들면 운전대의 역할이 방향기준을 잡아가는 것이고 엔진역할에 해당하는 것이 동기부여라고 하겠습니다.

 

우선 방향기준의 예로는 그리스도교적인 에토스를 통한 신앙의 완성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말을 할 수가 있는바 인간은 홀로 구원되지 못하고 이웃과의 관계에서 함께 온다는 것(마태복음 25장)이 그것이며, 율법으로 인한 타율적 관계로부터의 해방과 자유에로의 갈망과 주변부에 대한 압력으로부터의 해방(갈3.23~5.1)이 그것이며, 인간의 지배와 폭력을 대신하는 섬김(막10.42이하)이 그것이며, 법의 제정을 통해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그들에 대해서 도움을 주는 것이 그것이며, 모든 기준의 결과로서의 사랑을 계획에 의해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상황에서의 행동방향을 위한 영향력 있는 규정을 마련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방향기준에 대한 이해는 그것을 실현하는 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위한 동기부여 속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신앙 속에 함축된 동기부여를 위한 예를 들면 신적인 용서를 신앙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인간이 인간의 한계나 죄성, 부족함에 대해서 복수하거나 오산할 수 있다는 것에서 벗어나게 해주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사랑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것이 그것이며, 인간이 행하는 모든 것과 인식하는 모든 것은 잠정적이고 불확실하고 완전히 이용할 만한 것이 못된다는 그렇지만 인간의 결정이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예수 안에서 시작되었고 완벽한 인간성의 하나님 형상에 참여했다는 종말론적인 유보가 그것입니다.

 

그래야만이 신앙의 자유를 얻어 자기의지화와 자기실현화를 위한 압력으로부터 해방되어 구체적인 삶의 가능성이 수용된다는 것입니다.


 

출처 : 아니다/그렇다(不然其然)
글쓴이 : 네박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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