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 대학원]

[스크랩] 사회윤리학 이론의 구상 중에서

한신학 han theology 2014. 12. 24. 12:54

1. 간트

칸트에 의해서 하나님 나라의 윤리화가 철저하게 수행되었다. 칸트는 종교는 ‘신적인 계명으로서의 모든 의무의 인식’ 또는 ‘율법수여자와 관계속에서의 도덕’, ‘종교와 도덕사이는 아무런 구별이 없다.’ 라고 말했다. 그에게 있어 종교는 질료 즉 도덕에 관한 어떤 신조들에 대한 대상과 구별되지 않는다. 칸트의 도덕적 목적론은 도덕론에 하나님 나라의 사상을 편입시키고 덕과 행복 사이의 모순을 제거하는데 사용한다. 결국 덕을 위한 의무이행과 행복의 달성은 원인과 작용으로 이뤄지는데 칸트는 순수실천이성의 가설 즉 불후성(不朽性)과 하나님이란 가설을 발전시키면서 유한에서 실현될 수 없는 율법의 신성성에 대한 상응이 오직 무한한 것 속에서 진행되는 과정이 실현시킬 수 있게 됨을 말한다.

칸트는 결국 하나님이던 지고선이던 그 대상은 차이가 없고, 덕을 향한 의무이행과 행복의 달성은 지고선의 사상에서 원인과 작용으로 연결되는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는 도덕적인 보편적인 공화국으로 생각될 수 있고, 하나님 나라를 도덕적 성취를 위한 인간의 과제로 이해하기에 이른다. 칸트는 마침내 하나님의 나라를 도덕적인 성취를 향한 인간적 노력의 과제로서 이해하고, 그 나라는 초월적 개념의 나라지. 종말론적 사건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단지 그것에 근사 접근할 뿐이지 성취할 수는 없다. 이것은 종말을 세속화하려는 칸트의 방식이고 성서적 약속을 초월적 서술로 옮긴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19세기 독일교회는 특히 로테와 리츨은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전개를 이룬다.

2. 리하르트 로테

로테는 하나님 나라가 역사적 발전 속에 나타나며 성취된다는 관점을 주장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 개념이 신학적 윤리학의 중심 개념은 아니었고, 중심부에서 이 개념을 사용하고 그것을 자연과 역사에 관한 사색적 해석에 포함시킨다. 따라서 이 개념은 윤리, 사색적 해석에 모두 포함된다. 그에게 있어 하나님 나라는 세상적 역사의 목표이다. 그는 “준비하는 그리스도교도로써 중생의 상태로 상승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 나라로 발전, 성취되도록 처신하라.” 라고 말한다. 그는 도덕적인 과정을 ‘인간의 자기정신화의 과정’으로 이해한다. 그에게 인간은 ‘스스로를 통해 고유한 행위를 통해 영원한 존재’가 된다고 보았다. 자기정신화의 사상적 토대는 로테가-라가츠와 같이-지속적인 창조로 이해한 창조의 과정이다. 이 과정은 ‘영의 하나님의 세계형성(우주적)의 한 과정이며 창조적인 정신적 인간 형성의 과정과 같다. 형성의 과정은 도덕적, 정신을 통한 현상적인 것, 자연의 극복 속에서 성취된다. 이로써 로테는 칸트와 같이 종교와 도덕 사이를 구분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로테가 도덕을 종교적으로 전망한 것과 달리 칸트는 종교를 도덕에 한정시켰다는 점에서 차이를 갖는다. 하나님의 절대 지배, 절대적인 나라가 도덕적 선과 종교적 선에 있어서의 차이를 가질 수 없다면 이 둘은 같지만, 로테가 하나님의 나라의 성취에 대한 상상을 문제시했다면 그는 칸트와 구분될 수 있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지상적인 물질적 자연 일반의 정신화로 묘사한다. 구원받은 자연은 현상계에 결여된 순수한 정신의 나라다. 그는 천년왕국설을 분명하게 찬성했고,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종말론적 사건을 자연적인 범주 즉 기독교적 현실주의로 수용했다. 쉽게 말해 그 나라는 순수하긴 하지만 현실적이며 자연적 표상들로 서술될 수 있다는 것이다. 로테는 교회의 과제에 있어서 더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기독교회와 그 조직의 시초』에서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의 성취를 이 땅에 즉 우리의 사고를 위해 완전히 공허하고 성취불가한 추상인 초현세적 피안에서가 아니라 차안(Diesseits)에서 생기도록’ 규정했다. 물론 이런 공적은 근체철학의 공으로 돌려져야겠지만 근세철학이 그리스도교의 열망과 희망이 우선 미래적 차안에서 기대되는 신적인 나라의 완전한 현실성을 이미 현제적인 차안에서 보려고 한 위험스러운 오류를 범한다.

로테는 구원의 과정을 세계과정으로 이해한다. 종교개혁으로 스스로 원칙상 교회를 지양했으나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교회형태의 종말은 현대 기독교성에 있어서 기독인들이 탈교회화를 위해 싸우거나 할 것이 아니라 국가의 기독교화를 장려해야 할 것으로 보았다. 그에게 있어 국가는 문화국가인데, 보편적 유토피아와 국가유기체를 일치시킨다. 이로써 종교적 도덕적 공동체와 오직 종교적인 공동체가 그 범위에 철두철미 동시적으로 일어나며 따라서 후자, 즉 교회는 폐지된다. 이와같은 국가의 탈세속화 작업은 하나님 안에서의 인간의 역사가 종교적 도덕적 발전을 통해 한정됨을 보여준다. 따라서 그 나라의 성취는 구원 과정에 몰입한 인간의 고유한 자유 행동이며 절대적으로 역사적 발전의 성과이다. 그의 논제는 3가지 동기로 본다.

가. 국가와 정치를 기독교화 곧 기독교윤리학은 하나님 나라 역사, 통계학, 정치학이다. 나. 그리스도인의 과제는 세계형성이며 정치적 삶을 통해 국가에서 수행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로의 국가 이행의 국민 참여가 필요하다.

다. 하나님 나라 발전에 대한 인간 발전 과정은 (철도, 증기선 같은) 긍정적인 촉진제가 될 것으로 보았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 나라로의 인간 역사의 발전 과정에 대한 신앙이 지켜져야 가능한 사유이다. 이러한 도덕적 낙관주의는 복음과 세계의 구분을 항상 피할 수 있고, 매우 일면적인 발전 신앙적 해석이 전제되었다.

3. 알브레히트 리츨

리츨은 하나님 나라는 자연에서 해방된 정신의 나라라든지. 국가 유기체와 구분되는 종교적인 즉 교의학적으로 고찰해서 ‘은사’이며 ‘지고선’인 반면 윤리적으로는 그 생성이라는 관점에서 ‘과제’라고 이해했다. 물론 교의학적 개념과 윤리학적 개념은 통일성을 이루지만, 기독교의 윤리적 견해를 하나님 나라 사상에 축소시키는 태도를 비난한다. 그는 신자 공동체로서의 그리스도의 나라에 대한 루터의 이해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한다. 이는 사랑의 동기로부터 나온 도덕적 행위의 공동체가 가장 적게 표현됨이 그렇고, 칸트에 있어서는 하나님 나라의 주도적 의미를 덕법을 통한 인간의 결합으로 인정했는데 리츨은 하나님 나라 사상의 윤리적 적용에서 칸트의 입장을 따른다. 그렇지만 그는 칸트와 달리 하나님 나라가 하나님의 최종목적인 동시에 기독교 목적이며 예수가 제시한 사상이라고 제시한다. 예수는 하나님 경배의 보편적 실천만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사랑의 동기로부터 나온 행동을 통한 인간의 조직을 정초했고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정초된 공동체의 일반적인 목표이며 그 구성원들이 특정한 상관적 행동방식을 통해 서로를 결속시키는 공동체적 산물이다.” 그럼에도 리츨은 하나님 나라를 초세상적인 총체로 이를 보았는데 이것은 보편적 사랑의 동기로부터 나온 행동의 현재적 산물로서 우리가 모든 자연적인, 제한적인 현존재를 인정하는 한 초세계적이라는 것이다. 이로써 칸트의 성취불가능성은 사랑의 논증불가능성으로 대체되고 하나님 나라는 사랑의 동기에서 나온 상호적 행위의 주체로서의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러나 사랑의 동기가 지각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리스도교 공동체 내의 하나님 나라의 현존은 항상 불가시적이며 종교적 신앙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고 볼 수 있다. 리츨은 하나님 나라의 사상, 즉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한 사상이 ‘하나님의 왕권’의 고지만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왕권의 신민의 복종적인 행위’를 상관개념으로 요구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불명확한 행동이 아닌 직업 의무의 충실한 이행에서만 세계내적 형체를 얻게 된다. 그러므로 개인은 특수한 직업의 도움으로 선의 보편적 최종 목표에 자신을 종속시키며, 이기심을 극복한다. 이는 소명의 일이다. 이는 개인적인 기여이다. 리츨의 이런 직업과 하나님 나라 사상의 적용의 문제는 산업화 이후 축소된 후기 시민사회의 직업관을 옹호하는데 주장되기도 했다. 그의 하나님 나라 신앙을 윤리적으로 사용한 것을 보면

가. 하나님 나라에서 은총 즉 지고선만이 아니라. 도덕적인 과제도 본다. 직업의 분담을 각자에게 해줌을 통해 예수의 과제, 영향에 관점이 없던 칸트의 입장을 완전히 변경시켰다. 그에게 있어 하나님 나라는 윤리적 성숙이다.

나. 하나님 나라는 현제화된다고 해도 여전히 초자연적, 초세계적이다. 이는 계시에 의해 발아된 인간 행동을 통해 이미 현재적으로 실현된다. 예수로 인해 야기된 인간의 자발성속에 하나님 나라가 ‘온다’. 하나님 나라는 말씀 속에서가 아니라 도덕적인 행위 속에서 도래한다.

다. 직업은 하나님 나라의 세계내적인 구성원리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는 충실한 직업성취라는 삶의 이상에서만 윤리적으로 실천될 수 있다.

4. 주석적 이의

요한네스 바이스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는 하나님의 유일한 행위이지 인간 행위의 영향이나 결과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비로써 리츨까지 적어도 선한 양심에 한정지어 생각해오던 하나님 나라의 사상은 막을 내린다. 불트만 기적사건으로 하나님 나라 도래를 말했고, 인간의 행위 없이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생기는 것으로 보았다. 이것은 은사이며, 우리로 야기될 수 없는 기적이다. 이로써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위한 기도와의 관련 속에서 이해할 수 있으며, 윤리적 노력을 위한 요청으로서 파악할 수 없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윤리학의 저편에 서 있다. 라는 말이 명백해 진다.

출처 : 복음과 현존
글쓴이 : 이희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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