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이론과 이론기계 들뢰즈에서 진중권까지

한신학 han theology 2019. 1. 22. 16:22

근대문학이 지닌 자명성의 근거를 해체한다

이론 비평 학자 오길영이 들려주는 문학비평서『이론과 이론기계』. 현대비평이론과 근대문학의 근거에 관하여 논의한 것으로 저자가 몇 년동안 쓴 이론비평 성격의 글을 모아 엮었다. 들뢰즈 사유의 핵심과 문학성과 리얼리즘과 같은 개념이 지닌 문학적 의미를 탈근대적 관점에서 조망한다.

들뢰즈, 가라타니 고진, 에드워드 사이드 등 근대적 관점에서의 문학과 문명 관계를 진단하고 문학이론의 한국적 수용양상의 가능성과 한계를 어떻게 가늠할 수 있는지 탐문한다. 또한 피에르 부르디외와 프레데릭 제임슨, 테리 이글턴 등의 이론을 통해 문학의 사회학적 관점의 가능성과 한계를 진단한다.

김훈의 에세이를 주로 분석해 개별적인 삶의 이해가 없는 개혁의 공허함을 이야기하고 한국 인문학과 문학의 현장에 관한 심도 있는 관점을 통해 문학 비평을 보여준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저자소개

오길영

지은이

오길영

서울대 영문과 및 동대학원 졸업. 미국 뉴욕주립대 영문학 박사. 현재 충남대 영문과 교수. 탈근대 문예론, 문화이론, 현대영미소설에 관심을 갖고 가르치고 연구 중이다. 저서로는 『이론과 이론기계: 들뢰즈에서 진중권까지』,『지구화 시대의 영문학』(공저), 『에드워드 사이드 다시 읽기』(공저)가 있으며, 다수의 비평이론, 현대영미소설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비평공동체 ‘크리티카’의 동인이다. 홈페이지: BLOOM.PE.KR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목차

1부 이론에서 이론기계로

들뢰즈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 유목주의와 자율주의의 비판적 검토
근대와 근대문학의 자명성을 의심하기 - 가라타니 고진 읽기
세속의 지성과 망명자의 시선 - 에드워드 사이드의 사유와 정치론을 중심으로
재현미학에서 존재미학으로 - 진중권의 미학서 두 권 읽기

2부 텍스트, 해석, 그리고 비평
예술의 과학의 가능성 - 부르디외의 『예술의 규칙』을 중심으로
텍스트의 세속성과 정치성 - 제임슨, 이글턴, 사이드를 중심으로
텍스트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 제임슨의 『정치적 무의식』의 해체론적 읽기

3부 이론과 현실의 거리

심미적 이성의 경계 -『사유의 공간』의 김우창론 읽기
더 깊은 개인주의로 - 김훈의 에세이 읽기
루카치, 철지난 유행가인가? - 김경식 지음, 『게오르크 루카치』읽기
탈식민주의, 저항인가? 유희인가? - 탈식민주의의 몇 가지 문제
성적 차이의 윤리와 언어 - 정해경 지음『섹시즘』 읽기
눈의 독재와 새로운 윤리 - 임철규 지음『눈의 역사, 눈의 미학』 읽기
근대의 산문성과 개인주의의 신화 - 이언 와트 지음『근대개인주의신화』 읽기

[예스24 제공]

출판사 서평

근대문학이 지닌 자명성의 근거를 해체한다!
성실한 영문학 연구자 오길영의 이론비평집


비평은 여전히 문학행위의 성찰을 주도한다. 비평의 본질은, 알려져 있고 표현된 문학의 당위에 대해 왜 그러한 것이고 왜 그럴 수밖에 없는가를 의식적으로 묻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때 비평작업의 존재 가치는 비평이 시와 소설 같은 문학작품의 2차 텍스트로서의 한계를 자각하는 것과는 별개의 층위에서 존재한다. 좋은 비평이란 자신의 역할을 문학작품을 해석하는 데 두기보다는 문학작품 자체가 가진 질문을 다시 되묻는 데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좋은 비평의 자격은 문학작품과 대화를 나눌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이론과 이론기계』의 저자 오길영은 이론비평을 주로 해온 영문학자다. 따라서 일반 독자들에게는 비교적 낯선 이름이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첨예한 문학적 질문과 주제의식을 갖고 문학의 본질과 가능성을 탐문해온 성실한 연구자이다. 비평을 나눌 때 흔히 이론비평과 작품비평, 혹은 강단비평과 현장비평으로 나누는데 이와 같은 분류는 다분히 비본질적이고 임의적이다. 작품비평에 대해 이론비평이, 현장비평에 대해 강단비평이 폄훼되고 평가절하 되어온 것은 한국에 근대문학이 태동한 이후, 자연발생적으로 벌어진 문학권력의 구조적 문제와 더불어서 파생된 매우 터무니없는 현상일 뿐이다.

알려져 있는 것처럼 비평가가 취하는 스탠스는 자신이 소구하는 문학적 주제에 대한 특유의 태도를 고민하는 자리에서 촉발된다. 오길영은 이론비평에 경도되어 있는 연구자이고, 자신이 이론비평에 천착해온 것에 대해 매우 자명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그의 문제의식은 그가 이론물신주의에 경도된 이론비평을 비판, 지양하고, 새로운 가치를 찾고자 들뢰즈의 이론-기계 개념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 있음을 고백하는 부분에서 분명한 입장을 갖는다. 저자는 들뢰즈 사유의 핵심은 “대상의 의미를 그것이 지닌 내적 속성이 아니라, 외부성의 관점, 혹은 배치의 관점에서 사유한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대상은 그것이 특정한 상황과 관계 안에 배치되어 활용되는 기능과 역할에 따라 성격이 규정되며, 따라서 대상의 본질적 속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하나의 이론을 성경으로 절대화하고 그에 대해 훈고학적 주석을 다는 것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는 이론을 이론물신주의라고 비판하는 것도 이와 같은 그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말하자면 그에게 ‘이론’은 창작에 선행하거나 후행하는 보편적이고 의존적인 개념이 아닌 문학적 주제로서의 삶과 세계, 그리고 문학의 본질을 캐내는 데 있어 매우 효율적인 열쇠말인 것이다.

책의 구성 ; 들뢰즈, 부르디외, 김훈

이 책의 전체구성은 3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들뢰즈, 가라타니 고진, 에드워드 사이드 등 근대적 관점에서 문학과 문명의 관계 등을 진단한 학자들을 주로 다룬 1장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글은 오길영 이론비평의 전거랄 수 있는 들뢰즈를 원용하고 있는 첫 번째 글 「들뢰즈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이다. 저자는 이 글에서 들뢰즈적 사유를 원용하면서 문학이론의 한국적 수용 양상의 가능성과 한계를 어떻게 가늠할 수 있는지를 탐문한다. “바깥의 가능성과 순환적 기능을 잃”은 책 혹은 “해석은 살아남지만 책 자체의 내부”에 머물고 있는 책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들뢰즈의 이론을 확장시켜 탈주, 탈영토와와 재영토와, 코뮌주의 등의 개념과 연계시키며 특유의 심도있는 논의를 전개한다.

텍스트, 해석 등과 맞물린 비평의 역할을 주로 다루고 있는 2장에서 그는 피에르 부르디외와 프레데릭 제임슨, 테리 이글턴 등의 이론을 차근차근 검토하면서 문학의 사회학적 관점의 가능성과 한계를 진단한다.
실제로 대상이 되는 텍스트 비평을 시도한 글을 묶은 3장에서 가장 주목을 요하는 글은 현재 우리 문단의 대표작가로 우뚝 선 김훈의 에세이를 분석하고 있는 글 「더 깊은 개인주의로」이다. 그 글에서 오길영은 김훈의 에세이를 “희망이나 전망이 없어도 살아야 되는 삶의 허무주의를 돌파하는 냉철한 리얼리즘의 표현”이라고 정의한다. “진술이 숙명적으로 지니는 결핍”으로서의 김훈의 글을 읽어나가는 오길영이 꺼내 든 열쇠말은 ‘허무’와 ‘위악’ ‘분노’ ‘회의주의’, 그리고 ‘개인주의’ 등이다. 그는 김훈의 에세이가 가지고 있는 개인주의의 성격을 예로 들면서 개별적인 삶에 대한 이해가 없는 개혁의 공허함을 단호하게 지적하는 것이 김훈의 개인주의이며 이것은 “삶이 몇 개의 앙상한 논리와 법규와 공허한 말들로 규정될 수 있다고 있다고 믿는” 자들의 세계에서 더욱 분명한 매력적인 빛을 발한다고 말한다.

독특한 기품을 갖는 문학비평집

들뢰즈, 에드워드 사이드, 데리다와 푸코, 프레데릭 제임슨과 테리 이글턴, 벤야민과 아도르노, 그리고 김우창과 진중권 김훈에 이르기까지 근대서구의 지적 거장의 이론에서부터 한국 인문학과 문학의 현장에 이르기까지를 심도 있는 관점에서 유려하게 살피고 있는 오길영의 『이론과 이론기계』는 개별적 문학작품을 신화화하는 논리의 왜소함과 공교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문학비평 작업에 신선한 충격과 자극을 가하는 매우 기품있고 내실 있는 희귀한 문학비평집으로 독특한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

[예스24 제공]

책속으로

철학-기계 혹은 이론-기계의 존재이유는, 들뢰즈가 표현했듯이, 우리가 경험적으로 느끼고 있되 분명한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는 대상에 명료한 표현을 주는 데 있다. 철학은 개념의 발명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개념의 내재적인 의미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개념들이 새롭게 놓여지는 상황의 배치와 효과가 더욱 중요하다.

철학은 닫힌 고정된 체계로 물신화되어서는 안된다. 언제나 지금, 이곳에서의 새로운 배치를 통해 철학-기계로 활용되어야 한다. 자신을 "성경"으로 받들지 말고 하나의 유용한 이론-기계로 최대한 활용하라는 들뢰즈의 조언. 은 반대의 방향을 취한다. 들뢰즈의 현란하나 난삽한 개념들을 설명하기 위해 현실의 익숙한 예들이 동원된다. 그때 드는 질문. 철학이 현실을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현실이 철학을 위해 존재하는가?

예컨대 이런 대목을 보자. "몰적 선분성 안에서 정의된 바에 따라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는 사람들에겐 안정과 출세를 위한 규범이나 척도로 보이겠지만, 그러한 방식의 성공과 실패에 무관심하거나 반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겐 자신의 삶을 절단하여 바치게 되는 파괴의 과정"(이진경 2004, 1권 621쪽). 이것이 유목주의자들이 주장하는 탈주의 삶이다.

근대적 삶의 억압에서 탈주하여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자율적인 삶. 그러나 이런 '상식적' 주장을 위해 "몰적 선분성"이니 "자신의 삶을 절단"이니 하는 개념이 동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요하다면 새로운 개념의 발명과 이용이 필요하다. 유목주의자들은 이런 쉽지 않은 개념들이 현실의 명료한 설명을 위한 고민의 결과라고 주장하리라.

그러나 개념의 배치를 고민하지 않으면 개념이 현실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개념의 유효성을 입증하기 위해 동원되는 역설이 나타난다. 자본주의 현실에서 자신의 삶을 억압하지 않고 자율적인 삶을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대중도 온몸으로 느낀다. ('들뢰즈를 어떻게 이요할 것인가' 중에서) 

김훈은 회의주의자이다. 그는 세계의 객관적, 혹은 보편적 인식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세계는 무수한 측면을 갖는다. 그 측면마다 하나의 독립적 시각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힘들여서 겨우 어떤 진술을 시도할 때 그 진술과 반대되는 또 다른 진술이 성립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회의가 나이 든 사람을 말더듬이로 만든다"(, 52쪽).

민주주의의 참된 가치는 깊이 있는 회의주의에서만 가능하다. 나는 김훈이 동인문학상을 거부하지 않은 것이 그래서 아쉽다. 그의 수상은 그가 표명하는 개인주의적 가치의 훼손이기 때문이다. 동인문학상을 주는 신문사가 어떻게 그가 평소에 피력해온 깊은 개인주의와 회의주의와 어울릴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수상소감에서 임화를 추억한다. "그는 민족의 이름으로 단죄되었고 계급의 이름으로 처형되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무너지면서 그 시대를 통과해 나간 그의 파탄과 죽음은 언어와 현실의 간극을 긍정할 수 없었던 한 청춘의 비극으로 보였습니다.

그는 정치범으로 처형되었지만, 시인으로서 죽었을 것입니다. 삶은 견딜 수 없이 절망적이고 무의미하다는 현실의 운명과, 이 무의미한 삶을 무의미한 채로 방치할 수는 없다는 생명의 운명이 원고지 위에서 마주 부딪치고 있습니다"(, 164쪽).

김훈이 지적했듯이 "삶은 견딜 수 없이 절망적이고 무의미하다는 현실의 운명과, 이 무의미한 삶을 무의미한 채로 방치할 수는 없다는 생명의 운명"을 고민하는 작가, "언어와 현실의 간극"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작가라면 삶의 구체적 '정치성'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김훈의 회의주의가 "언어와 현실의 간극"을 좁히려는 힘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삶을 둘러싼 복잡다단한 삶의 맥락에 스며 있는 추하고 교활한 현실을 통찰하는 논리를 더욱 갖춰야 한다. ('더 깊은 개인주의로' 중에서) 

[알라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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