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문화의 시대
언젠가 헬렌 켈러의 이런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타고난 불행을 딛고 성공한 헬렌 켈러에게 어느 기자가 "앞을 볼 수 없는 것보다 더 불행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헬렌 켈러는 이렇게 응수했다. "앞을 볼 수 없는 사람보다 더 불행한 자는, 눈으로 앞은 보지만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사람이지요"라고 말이다. 맞는 말이다. 생물학적인 시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래를 내다보는 긴 안목이다. 공간적인 앞을 보는 것은 시각(eyesight)이지만 시간적인 앞을 내다보는 것은 바로 비전(vision)이다. 비전은 창의력과 미래에 대한 신념과 의지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디에 있는가? 또한 우리는 어떤 삶의 비전을 가져야 하는가? 저명한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의 미래는 여가를 어떻게 수용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사실은 여가야말로 인간이 문화적인 삶을 즐기는 시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민들이 여가시간에 무엇을 하는가를 조사한 통계를 보면 수면,TV 보기 등의 순으로 나온다.
일하는 것이 고달파 여가시간에 잠을 자고 바보상자라는 TV를 본다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삶이 그리 문화적이지 않음을 방증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문화에서 우리의 미래를 찾아야 하며 문화적인 삶이라는 비전을 가져야 한다. 문화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모든 차이는 문화로부터 비롯된다. 남들보다 뒤처지고 남의 것만 모방하는 것도 문화이고, 언제나 새로운 것을 만들고 리드해 가는 것도 문화이다. 문화의 중요성을 새삼스럽게 강조하는 것이 어색할 정도로 문화의 중요성에 대한 대중적 공감대는 이미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다.
사실 문화는 우리의 삶의 방식이고 가치관이며 역사적으로 그 사회가 만들어낸 산물이지만, 오늘날에는 산업과도 결합되면서 부가가치의 새로운 원천이 되고 있다. 문화기술(CT, Culture Technology)은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첨단기술로 각광받고 있고 문화콘텐츠산업은 미래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어느 한때 문화가 중요하지 않은 적이 없었겠지만 오늘날 문화는 갈수록 더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지성계에서는 "1980년대의 화두를 사회과학이 제공했다면, 1990년대 화두의 원천은 문화비평"이라고 분석한다. 1990년대 들어 물질적으로 점점 더 풍요로워지고 경제 수준도 선진국의 초입에 진입하게 되자 온 사회가 부쩍 문화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21세기는 '문화의 세기'이다.
문화의 힘은 강하다. 프랑스 사람들이나 이탈리아인들의 오만방자함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들이 지나칠 정도의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자국 문화의 힘과 잠재력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경우는 국가가 나서서 문화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을 펴고 있고, 심지어 공식적으로 '문화국가'(Etat culturel)라는 말까지 사용하고 있다. 그들은 경제는 앵글로 색슨 국가에게 뒤져도 문화만큼은 절대 뒤지지 않고 뒤질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경제는 '존재의 문제'지만 문화는 '어떻게 존재하느냐'의 문제다. 다시 말해 경제는 생존의 문제지만 문화는 삶의 질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렇게 문화는 삶의 질을 다루기 때문에 더 중요하다. 삶의 질을 다투는 문화경쟁은 국가간의 최종적 경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화연구가 레이먼드 윌리엄스는 "영어 단어 중에서 가장 정의하기 어려운 단어 중 하나가 문화(culture)"라고 말했다. 문화라는 용어는 그만큼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고, 사용하는 사람마다 의미가 다르다.
문화란 도대체 무엇인가? 문화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우리의 일상 속에 뿌리내리고 있고 인류역사와 궤를 같이해 온 것이 바로 문화지만, 사실 문화만큼 정의하기 힘든 개념도 드물 것이다. 사람마다, 민족마다, 시대마다, 지역마다 문화에 대한 정의는 달라질 수 있고, 문화에 대한 합의된 정의도 여전히 부재한 상태이다. 원래 문화라는 용어는 라틴어의 cultura에서 파생되었다. 본래의 뜻은 경작(耕作)이나 재배(栽培)였는데, 나중에는 '교양이나 예술' 등의 뜻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문화인'(文化人)은 '교양인'이나 '예술인'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된다.
우리는 문화라는 단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데, 이 문화라는 용어는 맥락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는다. 우선은 '좋은 취미로서의 문화'(culture as good taste)이다. 훌륭한 예술을 알고 오페라 구경을 가고 프랑스 음식을 즐기는 사람을 문화인이라고 한다면 이때의 문화는 '고급스런 취향'이란 의미의 문화이다. 두 번째는 '한 사회 및 그 사회와 관련된 모든 것을 지칭하는 넓은 의미로서의 문화'(culture as everything)인데 프랑스 문화, 서구문화(西歐文化) 등의 용어에서 사용되는 문화이다. 세 번째는 사회학자들이나 사회과학자들이 문화를 언급할 때 사용하는 '문화'이다. 이때의 문화는 '지식과 가치체계로서의 문화'(culture as knowledge and belief systems)라는 의미를 갖는다.
또한 사회학에서는 문화에 대한 정의를 크게 광의의 것과 협의의 것으로 나누기도 한다. 광의의 문화는 '사회적 인간이 역사적으로 만들어낸 모든 물질적, 정신적 소산'을 말하는 것인데, 이 중 정신적인 산물을 물질문명과 구분하여 협의의 문화라고 정의하고 있다. 좀 단순화시켜 이해하자면 가치나 신념, 사고방식이나 이론, 철학, 생활양식 등 무형의 측면은 문화이고, 기계나 건축물, 발명품 등 물질적 산물은 문명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정신문명, 물질문화라는 말은 어쩐지 어색하고 정신문화, 물질문명이라는 말이 자연스러운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물론 이런 식의 구분은 문화와 문명을 구분하는 독일철학의 영향이 크다. 독일어에서는 '문화'를 의미하는Kultur와 '문명'을 뜻하는 Zivilisation이 본질적으로 다른 두 영역이다.
문화에 대해서는 수많은 정의들이 있지만 그 중 가장 빈번하게 인용되고 가장 널리 통용되는 정의는 영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버넷 타일러(Sir Edward Burnett Tylor, 1832~1917)의 정의다. 문화인류학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타일러는 자신의 저서 『원시문화 Primitive Culture』(1871)에서 문화를 "지식, 신앙, 예술, 도덕, 법률, 관습 등 인간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획득한 능력 또는 습관의 총체"라고 정의했다. 사회과학적으로 보면 산업도 문화고 상업도 문화고 과학기술도 문화이다. 모든 사회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회학자들은 '사회가 그릇이라면 문화는 그 그릇에 담겨있는 내용물'이라고 이야기한다.
시대마다 사회마다 문화는 존재하지만 그 문화는 늘 변화하고 진화한다. 오늘날의 문화는 19세기의 문화와는 분명히 다르다. 당시만 해도 인간다운 삶보다는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가 더 절박했다. 19세기의 서구사회는 자본주의가 막 태동해서 발전하던 단계였기에 노동자들의 노동환경도 열악했고, 노동자들의 일상적인 삶은 비참하기만 했다. 이런 노동자들의 참상을 지켜보던 칼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경제메커니즘의 비인간적 본질을 폭로하면서 노동자의 나라를 꿈꾸었던 것은 시대적 필연이었는지도 모른다.
당시의 노동자들은 '8시간 자고, 8시간 일하고, 8시간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원했다. 지금은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그들의 요구가 당대로서는 유토피아 같은 이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실 생존을 위한 노동시간 8시간과 회복을 위한 육체적 휴식이나 수면 시간 8시간을 뺀 나머지 8시간이야말로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인간적 삶을 가꿀 수 있는 시간이다. 문화는 인간만이 향유하는 일종의 특권일 수 있다.
동물의 세계는 자연세계이다. 하지만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세계는 문화의 세계이다. 동물은 자연 상태에서 자유롭지만, 인간은 사회 속에서 공동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다. 자연 상태에 놓여 있는 동물과 인간이 구분되는 지점은 바로 문화이다. 그렇기에 '문화'는 '자연'(nature)의 상대어이다. 흔히 '문화'의 상대어가 '야만'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문화와 문명을 혼동한 결과이다. '야만'의 상대어는 '문명'이다.
각설하고, 초기 노동운동가들이 꿈꾸었던 '8시간의 인간적인 삶'은 아마도 문화에 해당되는 시간일 것이다. 하지만 19세기, 20세기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8시간만 일해서는 먹고 살기가 힘들었다. 자연히 여가시간이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사회가 점차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면서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줄어든 반면 여가시간은 늘어났다. 사람들은 여가나 레저, 엔터테인먼트, 자기계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과학의 진보가 결합되면서 문화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던 것이다.
영화가 만들어지고, 음반이 나오고, 게임과 레저스포츠가 나타났다. 산업사회의 문화는 이렇게 계속 발전되어 왔다. 여가시간이 늘어나고 문화생활이 윤택해진 것은 산업사회(Industrial Society)와는 구분되는 탈산업사회(Post-industrial Society)의 주요한 징후 중 하나이기도 하다. 문화는 여가선용이나 인간다운 삶의 향유 차원에서 그치지 않았고, 점차 산업과 결부되기 시작했다. 문화 자체가 하나의 산업이 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요즘은 '문화'와 '상품'(Product)의 합성어인 '컬덕트'(Cul-duct)라는 말까지 사용된다.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주의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고 사회주의 사회는 사회주의 나름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는 말 그대로 자본(돈)이 가장 근본이 되는 사회이므로 문화도 자본의 논리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와 산업을 굳이 구분하는 것은 쉽지가 않은 것이다.
문화가 중요해지면 사회 전체의 총생산 중 문화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미국이 영화 「쥬라기 공원」 한 편으로 올린 수익은 우리나라가 한 해 동안 자동차수출을 해서 벌어들인 총액을 능가한다. 할리우드 영화산업은 항공우주산업, 군수산업, IT산업 등과 함께 미국의 국부를 지탱하고 있다. 바로 이런 것이 문화의 시대 21세기의 새로운 풍속도이다. 문화산업은 국가경쟁력의 원동력이며 미래발전의 관건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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