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문화 연구소

[스크랩] 동학사상 살펴보기, 하나

한신학 han theology 2018. 5. 19. 21:27
동학사상에 대한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를 살펴보면 1894년 농민전쟁과 관련지어 고찰한 것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 까닭은 아마도 관점을 좁혀 보면 당시 전쟁을 수행하던 자들에게서 표명되는 내용이 동학과의 유사성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며, 넓은 시각으로 보면 1894년 농민전쟁을 전후로 해서 나타났던 한국역사의 흐름이 지금까지 어마어마한 충격으로 보여 지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곧, 전쟁 전에 나타났던 수많은 농민들의 분노와 전쟁 후의 일련의 사건들은 조선왕조라는 노령(老齡)의 왕국을 끝내 일본이라는 제국주의의 마수에 걸려들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동학사상에 관한 연구동향을 살펴보면서 여러 가지 미흡함을 느끼게 되는데, 아마도 이것은 1894년 농민전쟁의 밑바탕에 흐르고 있는 동학사상의 역사적 성격을 올바르게 규정짓지 못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곧, 역사상의 종교현상으로 나타났던 동학사상이 1894년 농민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너무 일방적으로 파묻혀졌다고 하는 사실이다. 특히 최근에 들어서 이러한 경향의 연구 성과가 많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동학사상을 서술하면서 최제우 당대의 사상과 최시형과 손병희를 거쳐 변화를 보이고 있는 사상이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고, 섞여 있어서 동학사상의 본래의 모습과 변화되어 발전하는 모습을 찾기 힘들게 한 것들도 있었다. 물론, 사상 역시 역사의 흐름에 따라 변화‧발전하는 것이지만, 그 사상의 선후관계는 분명하게 해야 하리라 생각한다. 마치 후대의 변화된 사상을 원초적인 것처럼 서술한다면 분명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한편, 동학사상을 하나의 종교형태로 파악하고, 특히 최제우의 창교(創敎) 당시의 사상과 그 변화 과정을 여러 분야의 연구자들에 의해 깊이 있게 연구한 성과물이 여러 편 있으며, 이들의 신선한 자극은 동학사상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기회를 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1894년 농민전쟁을 살펴보기보다는 그것의 원초가 된 종교로서의 동학사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곧, 동학사상이 종교로서 표출되어 나름대로의 세계관을 지니는 하나의 ‘사회적 의식’의 형태1)로서, 하나의 역사성을 지녔다고 하는 규정에서 출발하여 이제까지의 중요한 연구 성과들을 살펴보면서 동학사상의 변화하는 모습들을 살피면서, 거기에 스며있는 여러 가지 의식의 형태들을 세계관, 인간관, 역사관 그리고, 동학사상이 1894년 농민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맞물리게 되는 근거로서의 사회‧정치사상을 기왕의 연구 성과를 통해 정리하면서 앞으로의 연구방향을 전망해 보기로 하겠다.
 
--<주>
1) 종교는 세계관의 성격을 갖는 ‘사회적 의식’의 형태로서... 자연과 사회의 제반 현상이 초자연적인 원인과 목적으로 환원되거나 초자연적인 사건 또는 힘으로 표상 되며, 인간은 이 초자연적인 사건이나 힘에 직접적으로 의존한다고 생각하고 또 자신의 안녕을 유지하려면 특정한 행위[기도, 봉헌, 제사, 의식(儀式)]를 할 의무가 있다고 느낀다...
       한편, 인식의 측면에서 볼 때, 자연과 사회의 구체적 연관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과정에서 그때그때의 생산 조건과 생활 조건 때문에 갖게 되는 인식의 한계를 사고상(思考上)으로 뛰어넘는 데서... 그 세계관적인 내용상 객관적 관념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엮음 1989 <<철학대사전>>, 1186-1190쪽).
      그러므로 종교 역시 하나의 역사현상이라고 규정할 때, 그의 역사적 기능은 사회의 통일을 유지하게 하는 정신적 기초를 마련해 주는 동시에 문화의 창조력과 역사의 추진력을 지니는 것이라 하겠다.
     다시 말해 종교의 윤리적인 요소나 의례를 통한 정서적인 고양감(高揚感)은 한 사회를 통합하게 해 주며, 이질적인 성원 각자를 특정의 표상체계(表象體系)를 통하여 한데 묶는 구실을 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그와 동시에 종교는 낡은 체제나 낡은 정서를 사상(捨象)시켜 버리는 역할도 수행한다. 곧, 단순한 추상적인 교리나 관념의 수준에서 머물렀던 종교는 그 역사적 생명을 더 이상 지탱할 수 없게 되어 버리게 되는데, 사회의 대변동이나 비일상적인 사태의 연속, 혹은 생활의 파괴로 하여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새로운 종교운동이 폭발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변혁기의 종교운동은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민중들에게 안심 입명의 도피적인 안정-종교의 보상기능-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동적인 새로운 가치 추구의 집합 행동으로 나오게 한다(황선명 1984 <종교와 민중운동> <<한국민중론>>, 415-419쪽).
       따라서 이 글에서의 동학사상은 최제우의 창교부터 1894년 농민전쟁이 발발하게 되는 2대 교주 최시형까지의 사상적 계승과 그 변화한 흐름을 파악한 연구성과들을 중심으로 다루게 될 것이다.
       또한 여기에서는 동학교단(=천도교)측의 연구성과를 배제하고자 하는데, 이들의 저술은 동학사상과 1894년 농민전쟁 연구를 위한 하나의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교단측의 편파성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고려할 때 당연한 것이라 하겠다. 다만, 이들의 자료를 보면 다음과 같다. 
       최류현 1920 <<시천교역사>> ; 이돈화 1933 <<천도교창건사>> ; 오지영 1940 <<동학사>> ; 홍장화 1990 <<천도교의 교리와 사상>> ; 홍장화 1990 <<천도교운동사>>
출처 : 고리아이 역사공부방 : Corean Clio
글쓴이 : 고리아이 원글보기
메모 : 동학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