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대학교 석박사과정]

스콜라 철학의 완성 스콜라 철학의 왕 토마스 아퀴나스 [Thomas Aquinas]

한신학 han theology 2017. 6. 11. 21:57
출생 - 사망1225(?) ~ 1274

중세기는 게르만 민족의 이동으로부터 시작된다. 게르만 민족의 이동으로 시작된 유럽 민족의 대이동은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의 접촉을 야기했다. 그 결과 진취적인 유목민족이 가지고 있던 목축에 관한 기술과 도구가 농경민족에게 전해지면서 농업의 혁신이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농업의 혁신은 풍족한 농업 생산물을 가질 수 있게 하여 중세기의 생산관계인 봉건제도를 빠르게 정착시켰고, 사회에는 잉여 생산물이 축적되었다. 중세기 농업 혁신으로 인한 잉여 생산물의 축적은 사회에 경제적인 여유를 제공하였고, 이는 12세기 이후 중세기의 대학 설립의 기초가 되었다.

합리주의적 가치의 결합 스콜라 철학의 정점에 있는 토마스 아퀴나스

스콜라 철학은 대학의 설립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중세기 초 교부철학은 교부(), 즉 성직자들에 의한 철학으로, 비교적 초월주의적인 성격이 강한 기독교 철학이다. 대학의 등장은 교부철학이 스콜라 철학으로 대체되는 계기가 되었다. 스콜라 철학은 학자(스콜라)에 의한 철학으로, 그리스 철학(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그리스도교의 가르침과 결합하여 성립된 철학 체계이다. 따라서 스콜라 철학은 교부철학에 비해서 합리주의적 가치가 강조되는 기독교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스콜라 철학도 여전히 초월적이고 신비주의적인 면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스콜라 철학자들은 신이 인간의 삶에 개입하는 일반적인 방식은 합리적인 자연법칙을 통해서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대학의 등장은 중세기를 기독교의 초월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정신과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정신이 공존하는 시대로 만드는 계기가 되었고, 그 중심에 스콜라 철학이 있고, 스콜라 철학의 정점에 토마스 아퀴나스가 있다.

14세기 이탈리아 화가가 그린 토마스 아퀴나스의 벽화(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 내부).

토마스 아퀴나스는 1224년(혹은 1226년) 이탈리아의 나폴리 근교에서 태어났다. 그는 젊은 시절 나폴리 대학에서 수학하고, 1245년 파리 대학으로 유학을 떠난다. 그곳에서 당시 대학자인 알베르투스 마그누스를 만나는데, 그와 함께 몇 해 동안 쾰른에서 연구 생활을 한 것을 제외하면 거의 10여 년을 파리 대학에서 보낸다. 그런데 당시의 파리 대학은 신앙과 이성의 갈등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1215년 로마 교황청은 아리스토텔레스연구를 금지하고, 1231년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담긴 오류를 시정하도록 권고한 위원회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1250년 경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한 강의금지령이 해제된 후에도, 신앙과 이성에 대한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중세기 철학자들을 논쟁의 소용돌이에 빠뜨린 중요한 두 개의 주제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신앙과 이성의 긴장에 관한 문제였고, 다른 하나는 보편자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여기서는 첫 번째 문제에 대한 아퀴나스의 입장을 살펴보면서, 13세기 중세기 스콜라 철학, 혹은 스콜라 신학에 대해 이해해 보기로 하자.

이해하기 위해서 믿는가? 신학과 철학이 만나 '믿기 위해서 이해한다'

신앙과 이성의 긴장에 대한 중세 철학자들의 입장은 매우 다양했다. 즉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고 말한 터툴리안과 같이 극단적으로 신앙을 우위에 둔 입장에서부터, 보에티우스처럼 계시적 진리를 받아들이지만 철학의 합리적 진리를 여전히 강조하는 입장까지 매우 다양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랍의 철학자, 아베로에스(Averroes)의 영향을 받은 일군의 신학자들은 신앙의 진리와 이성의 진리는 별개의 것이고, 따라서 진리는 두 개라는 이중 진리론(double-truth theory)을 통해서 그러한 갈등을 해소하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퀴나스가 보기에, 이중 진리론은 하나의 현상에 대한 신앙적 관점에서의 진리와 이성적 관점에서의 진리가 서로 충돌할 때도 여전히 둘 다 받아들일 수 있다는 모순적인 주장을 한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운 해결이 아니었다.

아퀴나스에 따르면 신이 특별한 은총으로 부여한 계시적 진리와 신이 부여한 이성에 근거한 이성적 진리는 모순적이지 않다.

아퀴나스는 신학과 철학은 구별되지만, 그 둘이 결코 모순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인간의 이성에는 고유의 법칙이 있고, 그것을 통해서 신의 개입 없이도 진리를 인식할 수 있고, 따라서 신앙으로 계시된 진리만이 유일한 진리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즉 인간에게는 두 가지 인식 방법과 인식 영역이 있고, 그런 이유 때문에 이성이 인식할 수 있는 것과 신의 계시에 의한 인식이 있다. 그리고 그 두 영역은 분명하게 구별되는 것이고, 따라서 경험을 통해서 이성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영역을 다루는 철학과 초자연적인 계시의 진리 영역을 다루는 신학은 구별된다. 그러나 이성의 법칙에 따라 인식된 진리와 계시를 통해서 얻게 된 진리는 서로 보충적일 수는 있지만 결코 모순적이지는 않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철학적 진리와 신학적 진리가 모순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퀴나스에 따르면, 인간의 철학적 진리는 인간이 신에 의해서 창조될 때 부여 받은 이성에 의해서 그 정당성을 갖게 된다. 이성적 진리는 신이 부여한 이성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결코 신이 특별한 은총으로 부여하는 계시적 진리와 충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신앙과 이성 사이의 관계에 대한 교부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의 입장은 ‘이해하기 위해서 믿는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고, 아퀴나스의 입장은 ‘믿기 위해서 이해한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앙이 지식의 토대이며, 이성적 지식보다는 신앙이 우선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믿기 위해서 이해한다’라고 표현된 아퀴나스의 입장을 이성이 신앙을 위한 토대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오히려 그의 말은 신앙의 영역과 이성의 영역은 서로 보완적이고, 자연적 이성을 통해서 신앙으로 나갈 수 있다는 합리적 신앙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요컨대 아우구스티누스처럼 아퀴나스도 이성에 의한 지식을 신앙(계시)에 의한 지식보다는 낮은 단계의 것으로 보았고, 이성적 사고와 신앙적 사고가 함께 할 때 세계에 대한 완전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는 기독교적 사유 틀 내에 있었던 것이다.

'경험 세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목적론적 세계관' 아리스토텔레스를 기독교화 하다

교부철학이 플라톤, 정확히 말해서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면, 스콜라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중세기 신학자들이 받아들이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다. 왜냐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의 중요한 부분이 기독교의 교리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은 본성상 지금의 모습대로 존재할 수밖에 없으며 거기에는 변하지 않는 규칙이 내재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입장을 받아들이면, 신의 개입으로 발생하는 기적을 인정할 수도 없었고, 우주를 신의 피조물로 여기기도 어렵다. 또한 당시 기독교 사상은 플라톤의 영향을 받아, 현실 세계에 대한 연구를 성서 연구에 부수적인 것 이상으로 간주하지 않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경험적인 현실 세계에 대한 탐구로부터 시작되고 그러한 탐구는 그 자체로 중요한 가치를 갖는 것으로 인정한다. 그렇다면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어떻게 기독교 신학과 화해시켜 기독교화 할 수 있었을까?

아퀴나스는 완전하고 궁극적인 지식은 신을 아는 지식이고, 그것이 바로 인간의 궁극의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아퀴나스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물려받은 가장 중요한 유산은 경험세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목적론적 세계관이다. 경험적이고 현실적인 것에 주목한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아퀴나스는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것에서 출발해야 함을 배웠다. 플라톤의 영향을 받은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참된 지식은 신이 인간에게 빛을 비추어서 알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를 “신의 조명설”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퀴나스는 신의 직접적인 개입 없이 인간의 이성을 통해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는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감각적 대상으로서의 자연물도 실재로 간주하고, 경험과 인간 이성을 통해서 그러한 실재에 대한 지식을 탐구하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경험을 중요시한 점은 아퀴나스의 신의 존재 증명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아퀴나스 이전의 철학자들은 신은 인간의 정신에 자명하게 드러난다는 이른바 선험적인 증명을 시도했지만, 아퀴나스는 신의 존재가 인간의 감각적 경험을 토대로 한 증명을 통해서 우리에게 인식된다고 설명함으로써, 경험적 신 존재 증명을 제시한다.

아퀴나스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은 바로 목적론적 사상이다. 이 점은 특히 그의 윤리학에서 잘 나타난다. 목적론에 따르면, 인간의 행위는 물론 인간 존재 자체에도 목적이 있다. 인간에게 존재의 목적이 있듯이, 인간을 구성하는 모든 기관에도 목적이 있다. 예컨대 눈은 보기 위해 존재하고, 귀는 듣기 위해 존재한다. 즉 눈은 ‘보기 위함’이라는 목적을, 귀는 ‘듣기 위함’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모든 존재는 자신에게 부여된 목적을 잘 실행할 때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존재 상태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존재는 그 존재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행위 할 때 도덕적이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신체의 일부를 그 존재 목적에 어긋나게 사용한다면, 그 행위는 자연스럽지 못하고, 부도덕하다. 중세기 기독교가 성 윤리에서 특별히 자위나 동성애를 어떤 성적인 부도덕보다 강하게 비난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인간의 성 행위의 목적과 성 기관의 존재 목적을 생식이라고 보았던 기독교 윤리에 따르면, 생식이라는 존재 목적에서 벗어난 행위들은 자연스럽지 않은, 부도덕한 행위로 여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을 받아들이면서, 인간의 궁극의 목적이 행복이라는 데도 동의한다. 즉 행복이 인간이 추구해야 할, 인간의 궁극의 존재 목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퀴나스는 행복 그 자체는 절대적인 것이어야 하고, 영원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에, 신을 아는 지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철학적 사유, 관조적 삶에서 행복을 찾은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답게 완전하고 궁극적인 지식은 신을 아는 지식이고, 그것이 바로 인간의 궁극의 행복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아우구스티누스를 재료로 스콜라 철학의 신전을 완성하다

아퀴나스가 스콜라 철학이라는 거대한 신전을 완성하는 데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라는 재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를 ‘그 철학자’라고 칭한 것처럼, 아우구스티누스를 ‘그 신학자’라고 칭했다. 다시 말해서 아퀴나스에게 있어서 철학자라고 하면 당연히 아리스토텔레스였던 것처럼, 신학자라고 하면 아우구스티누스, 단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스콜라 철학이라는 거대한 신전을 건축하기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재료는 아우구스티누스인 셈이다. 물론 아퀴나스는 아우구스티누스와 많은 점에서 다르다. 그러나 아퀴나스가 그의 대표적인 저서 중 하나인 [이방인 대전]의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그의 과제는 아우구스티누스처럼 “신에 대한 책임 있는 이야기”로서 신학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아퀴나스가 아우구스티누스와 달리 신앙의 영역과 이성의 영역을 구분했지만, 신앙의 영역으로서의 신학에 초월적인 계시와 기독교 구원의 신비주의적 영역을 남겨둔 것은 플라톤주의적이며, 아우구스티누스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철학자 아퀴나스는 ‘아우구스티누스주의자’가 아니었지만, 신학자 아퀴나스는 아우구스티누스주의자였다고 평가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결국 아퀴나스는 아우구스티누스라는 눈을 통해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수용함으로써 스콜라 철학이라는 거대한 신전을 완성한 셈이다.

아퀴나스는 1272년, 나폴리 대학으로 돌아가서 연구와 강의를 계속하다가, 1273년 일종의 무아지경의 깨달음을 체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내가 이제껏 쓴 것들은, 내가 보았고 나에게 계시된 것에 비한다면 한낱 지푸라기처럼 느껴졌다.”고 말하고, 강의와 저술 활동을 중지했다고 한다. 50년이라는 길지 않은 삶을 오직 연구와 저술, 그리고 대학에서의 강의로 보낸 아퀴나스.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를 보내면서도 절대자인 신에 대한 경외감을 가지고 신에 대한 지적인 여정을 멈추지 않은 아퀴나스. 그는 지금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종교와 이성 사이의 올바른 관계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촉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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