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GUNGEUN)

[스크랩] 죽음, 그 알 수 없는 심연

한신학 han theology 2016. 12. 16. 15:31

   

    어제 모 연예인의 죽음에 대한 기사를 보았다. 진정 인간의 삶이란, 죽음이 항상 어두운 그림자처럼 우리를 따라다니다가 그 언젠가 어둠의 심연속으로 사라져버리는 것인가? 어둠의 이미지로 각인된 그 죽음이 삶의 끝일까? 진정 그것이 삶의 끝이라면, 우리의 짧은 그 인생의 의미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특히 스스로 인생을 마감하는 '자살'이라는 것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자살이라는 단어를 떠올릴때마다, 느껴지는 '메쓰꺼움'과 '어떤 강력한 신적 힘(?)'의 이중적 느낌이 불연듯 스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죽음, 불치병, 절망 등 인간의 한계상황을 떠올릴때마다, 세계 내에 던져진 나 속에 자리잡은 우연성에 흠� 놀라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메쓰거운 구토가 올라온다. 또한 어느 철학자가 인간은 죽음을 선택할 자유의지를 지녔다는 점에서 신보다 위대하다고 말했듯, 인간에게 있어 삶은 죽음까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 연속이자 인간의 가장 큰 능력 중 하나이다.

 

  삶에서 수많은 선택에 대해 본인이 책임일 지듯,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는 '자살'도 그렇게 자유의지에 따른 개인의 선택이기에 도덕적으로 정당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인가? 아직도 동양사람들의 정서에 인명은 하늘에 달려 있다는 믿음이 강하게 남아 있음을 우리는 주변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그러나 어차피 시간은 흘러가게 되어 있고, 내 명이 한정된 것이라면 자살은 타인이 비난해서는 안될 개인의 선택의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자살의 문제를 개인의 선택의 문제로 한정하기에는 무언가 아쉬움이 남는다. 그것은 내 존재의 뿌리가 얽히고 얽힌 타인의 인연의 무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홀홀 단신 타자와 유리된 개인이라면 삶과 죽음의 선택 또한 개인의 자유일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삶을 마감하는 그 순간 보이지 않는 끈에 의해 영향을 미칠 수 많은 파장을 생각해 본다면 자살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이기 이전에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인간만이 자신의 죽음에 대한 예견을 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리하기에 삶을 사유하는 철학은 인간에게만 가능한 학문이다. 죽음을 향한 강한 충동과 약한 충동의 파동 사이에 인간의 삶은 유지된다. 타나토노스! 죽음의 외피엔 삶이 존재한다. 삶의 내면엔 죽음의 힘이 내재해 있다. 서로 다른 차원의 만남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그렇게 연속되어 있다. 삶과 죽음은 단절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차원의 만남이다. 살아있을 적에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미묘하고 어두운 영역. 그러나 삶과 결코 단절되어 있지 않는 연속성. 마치 삶의 흔적으로 주름진 바지에 살짝 달구어진 다리미로 주름을 피면 흔적이 사라지듯, 주름진 삶이 펴지는 그 곳 그 순간에 죽음의 순간이 있다.

 

  죽음에 대해 우리가 직관적으로 느끼는 공포는 내가 살아온 찌꺼기 같은 삶의 주름들이 펴지게 되어, 우주의 한 부분으로 녹아든다는데 있다. 커피 잔속에 놓인 크림처럼 언젠가 커피의 소용돌이 속에 녹아들수밖에 없듯, 공(空)으로 점철된 삶의 구멍들 속에 우리는 순간적인 달콤함을 채우고 또 채운다.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라는 신 앞에, 당당히 고개를 들 수 있는 순간은 우주와 내가 하나가 되어 녹는 그 순간에 찾아든다. 내 살을 구성하고 있는 '지,수,화,풍'의 4요소 속 원자와 전자, 그리고 더 이상 쪼갤 수 없다는 쿼크의 미립자 속에도 우주와의 합일을 지향하는 어떤 힘이 내재해 있고, 내 영혼을 구성하고 있는 '로고스(logos)'도 우주적이고 전일적 차원의 존재와 하나됨을 향한 어떤 힘이 내재해 있는 것이다. 결국 내 실존과 우주 사이에는 어떤 무로서의 공간이 놓여 있고, 인간의 죽음이란 바로 우주의 원초적 상태인 무(無)로 돌아감이 아니던가?  

 

  내가 아는 어떤 존재가 나와 함께 한 차원을 떠났다는 것, 그것이 죽음이요, 영원한 이별이라 규정짓는 건 인간의 사유가 가지는 차원의 것이며  떠난이를 그리워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일뿐이다. 바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듯, 인간의 삶도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수 없다. 깊이를 알 수없고, 방향을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삶은 깊은 바다이다. 깊을 수록 어둡고 무겁다. 한 순간의 물거품이 일어나 파도속으로 사라지듯 우리의 삶도 그런 것일뿐. 삶과 죽음, 그 교차점이 언제 어디에 찾아올지 아는 인간은 없다. 하루, 또 하루! 주어진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 뿐! 오직 그 뿐!  삶이란, 노자의 언명대로 때묻지 않은 무위(無爲)의 스스로 그러한 것임을 다시금 깨닫게 하는 나른한 어느 가을의 오후다.  

 

2008.9.9 꿈가우 

출처 : 꿈이 가득한 우편부
글쓴이 : Dream-er 원글보기
메모 : 타나토노스